문인 등 인물소재로 쓴 시집 … '사랑했을 뿐이다' 등 나와

'그이는 아직 살아서 있다/ 어떤 말이든 붙잡아 놀리기만 하면/ 그대로 시가 되는/ 신화/ 그이는 아직 살아서 있다/ 모오든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혼 있는 것과 혼 없는 것에/…(중략) 지금도 바람이 불기만 하면/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해일처럼/ 백일홍 꽃처럼/ 막 물대올 것 같은 말로/ 그이는 아직도 우리 곁에 시퍼렇게 살아서 있다. '(손진은 <서정주-그대로 시가 되는>)시인과 소설가 28명이 인물을 소재로 쓴 시 52편을 나누어 실은 《사랑했을 뿐이다》 · 《노래했을 뿐이다》(문학나무)가 출간됐다. 문학 계간지 <문학나무>에 실린 인물시들을 모아 낸 이 인물시집은 '그 인물의 단면을 한 편의 시로 스케치하고,그 인물의 특징을 한 편의 시로 요약 · 정리한,언어로 그린 초상화'다.

다뤄진 인물은 문인,연예인,역사적 인물,가족이나 지인 등 다양하다. 각 시마다 이인 화백이 그린 인물의 초상 및 시인과 인물이 맺은 각별한 인연이나 인상을 적은 시작 노트가 곁들여져 있어 보고 읽는 즐거움이 더 쏠쏠하다.

신달자 시인은 "선생님에게 사과를 봉지로 사 가지고 간 일밖에 없는 무례를 참으며 발렌타인과 같은 좋은 술 한병 들고 빠른 걸음으로 힘있게 대문 앞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고 싶다"고 그리움을 털어놓으며 <박목월-그 목소리 마시고 싶다>를 내놓았다. '오늘은 선생님을 아부지 아부지 하고 부르고 싶다/ 아부지이- 목월 아부지이-'라고 노래했다. 유안진 시인은 <이육사-절정의 겨울무지개>에서 '모국어로 가락 빚어 민족혼을 지켜냈고/ 몸을 얻은 나라에다 몸을 돌려 바쳤으니/ 시와 삶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몸소 증명하시었어라'고 읊었다.

연예인을 향한 동경을 표현한 이색적 작품들도 보인다. 박남희 시인은 "영원한 내 첫사랑 같은 이미지를 지닌 배우가 손예진"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손예진-바람을 바라본다>에서 '문희… 정윤희… 채시라… 이영애…// 지렁이처럼 기어가도/ 고속열차가 되어 전속력으로 달려가도/ 끝내 그냥 스쳐 지나간 이름들// 아름답던 그 이름들을 지나 모처럼/ 청초한 간이역을 만났다'고 썼다. 이외에도 스칼렛 오하라,조수미,사담 후세인,예수 그리스도 등이 시의 소재가 됐다.

이승하 시인은 "시인은 솔직하게 일화를 들려줄 수도 있고,인물 평가를 할 수도 있고,평소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한 바를 이야기할 수도 있다"면서 "인물의 변형과 인물에 대한 재창조,재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 인물시의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