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맹자와 같은 사서삼경은 제 삶의 이정표예요. 삶과 사업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늘 성현의 말씀이 서너 가지 떠오릅니다. 그 글귀들을 곱씹다 보면 갈 길이 자연스레 보이지요. "

경기도 분당신도시에서 이름있는 영어학원인 '아발론교육'을 이끄는 김명기 대표(41).

그가 늘 가까이 두고 즐겨 읽는 책은 성문기본영어가 아니라 '대학(大學)'과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 동양고전이다. 대학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전북 정읍에 있는 서당을 찾아 학식 높기로 이름난 혼원당(混源堂) 차봉남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지금도 그는 스승과 한시가 적힌 서신을 주고받으며 세상 이치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

지난달 30일 분당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손때가 묻은 '대학' 등 고전 수십여권이 눈길을 끌었다. 모두 20여년간 수없이 책장을 넘긴 탓에 여러 번 제본이 풀렸다 다시 묶인 흔적이 역력했다.

"영어학원 대표가 고사성어와 한문에 빠져 산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와 방법론은 서로 통합니다. 영어를 잘 하는 법이나 한문을 잘 익히는 법은 같아요. 수없는 반복,즉 학이시습(學而時習)이 그것이죠."

그가 처음 한문을 접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대학에 갈 돈이 없었다. 섬유공장과 신발공장 등에서 프레스 기술을 익혀 생활비를 벌며 입시준비를 했다. 1년 후,원광대 한문교육과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고 생활비도 보조할 테니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단 한 과목만 빼고 모두 A+를 받아 수석 졸업했다. 30대 초반까지 반드시 한문학 교수가 되리라 작심했다.

방학 때마다 대학에서 만난 서당 스승을 찾아 정읍으로 내려갔다. "밤 늦게까지 공부하다 잠들어도 새벽 4시50분이면 어김없이 방문 앞에서 스승님의 헛기침이 들립니다. 얼른 일어나 책의 첫장부터 전날 배운 곳까지 모두 읊어야 하지요. 못 외운 부분이 있으면 그날 수업은 없습니다. 얼마나 그게 두려웠는지,잠이 들기 직전까지 글귀를 중얼중얼댔어요. 그렇게 반복을 거듭하니 사서삼경을 전부 외울 수 있었죠."

영어교육사업에 뛰어든 것도 한문에 입문한 것처럼 우연이 작용했다. 서당 스승님께서 김 대표의 관상을 찬찬히 보며 '너는 영어공부를 해야 운이 트일 것'이라 했다. 타고난 복이 없으니,남들에게 기댈 것 없이 자수성가를 하라고도 했다. 마침 그 무렵 또 다른 스승인 교수님으로부터 대학원 장학금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는 토플 성적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영어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하루 8시간씩 사서삼경을 하듯 영단어·문장을 외우고 또 외웠다. 목이 트이고 정신이 맑아지도록 큰 소리를 내어 읽는 '성독(聲讀)'을 영어에도 적용했다. 군산 미군기지 근처에서 지나가는 미군을 아무나 붙잡고 커피를 한잔 사주며 실전연습을 했다. 이는 10년 전 분당에서 영어학원을 시작하는 밑거름이 됐다.

그의 사업 방식은 모두 고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호흡이 짧은 사람은 직원이 배신하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을 견디지 못합니다. 저는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논어에서 증자가 말한 '임중이도원(任重而道遠·임무는 무겁고 길은 멀다)'를 떠올리며 자신을 다잡지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 대학의 '물유본말(物有本末)'은 사업의 근본인 고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됐다.

그는 또 논어의 '충서(忠恕)'를 경영 원칙으로 꼽았다. "진기지위충(盡己之爲忠·자신을 모두 바쳐 최선을 다함),추기급인지위서(推己及人之謂恕·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용서함)로 나와 남을 대하면 안 풀릴 일이 없다"는 것.

깊게 생각해도 잘 풀리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스승에게 조언을 구한다. '차력(借力)'이다. 예컨대 '꽃이 피면 찾아 뵙겠다'고 적어 보내면 스승은 '꽃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답장을 주고,때가 되어 가면 스승이 상황에 맞는 시구를 적어주는 식이다. "최근에는 '낚시를 끝내고 배를 묶지 않고 돌아온 이가 아차 싶어 걱정하겠지만,그러지 말고 새벽달 뜰 때까지 깊이 잠들어라.그 배는 (멀리 가지 않고) 강변 갈대숲에 이르러 있을 것'이라는 글을 받았다"고 했다.

"영어를 통해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지식을 얻듯 한문 역시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입니다. 고전은 통고금(通古今)이라 하듯 수백 수천년 전 쓰여진 글에는 지금 세상의 경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이 있지만,제게는 한문이 혁신으로 느껴집니다. "

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사진=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