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조직폭력의 세계는 일상의 삶에서 벗어난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소재임에 틀림없다.

이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코미디부터 정통 액션을 표방한 것까지 조폭을 소재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가 붐을 이를 정도였지만 조폭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컸다.

영국의 탐사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사우스웰이 펴낸 '조폭연대기'(이마고 펴냄)를 처음 대할 때도 '또 조폭이야기인가.

도대체 조폭의 연대기를 소개해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우려가 들 법하다.

그러나 삼합회 조직원으로부터 '손목을 잘라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으면서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조직범죄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행해지는 어림잡아 1조 달러 규모의 사업"이라며 "21세기의 키워드는 세계화인데 현대의 조직화된 범죄보다 국제적 상호연관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인간 활동도 없다"고 조폭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를 설명한다.

책은 이탈리아와 미국의 마피아와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 등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범죄조직부터 '오르가니자치야'로 불리는 러시아 마피아, 나이지리아의 범죄 신디케이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암흑가를 지배하는 주요 범죄조직에 대해 기원부터 계파, 조직체계와 규율, 범죄유형, 수법, 핵심 인물까지 범죄조직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

미국에 처음부터 마피아가 활개를 쳤던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미국의 조직범죄를 장악했던 것은 아일랜드 갱단이었지만 1880-1910년 사이 200여만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됐다.

당시 사회 최하층으로 아일랜드 갱단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탈리아인을 보호하기 위해 시칠리아에서 온 마피아와 나폴리의 조직원들인 이른바 '코사 노스트라'가 미국 마피아의 시작이었고, 이들은 이후 1920년 금주법과 함께 주류 밀거래를 통해 날개를 달고 성장했다.

일본 야쿠자를 다룬 내용에서는 한국계 야쿠자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저자에 따르면 사회가 거부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범죄조직으로 받아들이는 야쿠자 전통은 일본 조직범죄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 하나였다.

저자는 야쿠자가 1910년 한일합병을 위한 정치상황을 만드는데 일조했고 야쿠자가 그 전에도 일본 우익조직 흑룡회를 대신해 한국에서 테러 활동을 했으며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도 야쿠자의 짓이라고 주장한다.

'긴자 호랑이'로 불렸던 마치이 히사유키라는 한국계 야쿠자의 이름도 등장한다.

1923년 정건영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한국인으로 도세이카라는 한국인 위주의 갱단을 만들었으며 현재 '도아 유아이지교 구미아이'(동아우애지교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꾼 이 조직은 도쿄 내 가장 강력한 범죄집단 중 하나이며 많은 일본인 조직원을 거느린 어엿한 야쿠자 조직이라고 한다.

책은 조직범죄와는 왠지 거리가 멀 것 같은 뉴질랜드의 조직범죄단을 비롯해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카르텔, 자메이카와 나이지리아의 조직범죄단, 캐나다,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조직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며 동시에 영화 '언터처블'에 등장하는 엘리어트 네스처럼 조직범죄에 맞선 전세계 경찰조직과 인물들을 소개한다.

조직범죄단과 연계돼 있는 유명인들의 일화도 흥미롭다.

존 F.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가 금주법 시절 마피아들과 주류 불법거래로 부를 쌓았고 그렇게 쌓은 마피아 인맥을 통해 아들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다는 사실, '마이 웨이'를 부른 프랭크 시내트라가 1946년 추방중이던 친구 마피아 보스를 위해 쿠바 아바나까지 찾아가 노래를 불렀고 영화 '대부'의 원작소설 속 조니 폰테인으로 등장하는 가수의 모델이 시내트라였다는 이야기, 7번이나 이탈리아 수상을 역임한 줄리오 안드레오티가 시칠리아 마피아의 일원이었다는 이야기 등은 마치 영화 속 이야기 같은 실화들이다.

왜 또 조폭 이야기인가 하는 처음의 물음에 대해 저자는 "조직범죄를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그것이 단순히 더 많은 경찰과 더 가혹한 법 혹은 전 인구를 상대로 한 대규모 수사와 감시로 절멸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일지 모른다"는 답을 내놓는다.

가난과 금지, 인간의 탐욕이 조직범죄의 근원이며 범죄가 재발하는 원인이지만 인간의 본성인 탐욕을 막을 수는 없으므로 가난과 금지를 다루는 것이 조직범죄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저자가 '조폭의 모든 것'을 분석한 뒤 내놓는 결론이다.

"궁핍, 굶주림, 고난은 늘 범죄 행위의 가장 큰 원인이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중략) 조직범죄가 진정 국경을 초월한 오늘날, 그것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 방법은 빈곤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퇴치하는 것뿐이다.

호시탐탐 세상을 파괴하려는 조직범죄의 마수를 우리가 진정 물리칠 수 있을까? 희망은 그 원인이 되는 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바꾸는지에 달렸다.

"
추미란 옮김. 508쪽. 2만2천500원.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zitro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