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오는 살로메는 계부 헤롯왕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요부다. 광기 어린 헤롯왕보다 살로메가 세계문학사에서 더 자주 인용된 것은 이 같은 잔인함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40)는 살로메가 한 번도 사랑을 해보지 못한 16세 소녀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세례 요한을 처음 본 순간 사랑을 느끼지만 그에게 거절당하자 순진한 소녀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미쳤다고 해석한다.

그가 10월 2~5일 LG아트센터에 오를 국립오페라단의 '살로메' 총연출을 맡아 서울에 왔다.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한 쪽 귀에서 반짝이는 피어싱이 신세대 연출가의 모습을 돋보이게 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열여섯살짜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세례 요한을 죽였겠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이어 "순수한 사랑을 갖기 위해 삐뚤어졌을 뿐이며,그렇게 본다면 살로메는 아주 슬픈 여자아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연출과 다르게 가고싶었죠.어느 가정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헤롯왕가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요한이 헤롯과 완전히 반대 되는 것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싶었어요."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에 독일 낭만파 음악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을 붙인 작품.유대왕 헤롯은 그의 형수 헤로디아스와 결혼하지만,조카에서 딸이 된 살로메에게도 욕정을 품는다. 살로메는 세례 요한에게 사랑에 빠지고 부모의 불륜을 비판하던 요한은 살로메를 거부한다. 이에 분노한 살로메는 헤롯왕을 유혹해 요한을 처형한다.

이번 무대에서 살로메가 몇 겹의 옷을 꼭꼭 입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박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살로메에게 욕정을 품는 헤롯왕은 반라의 퇴폐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바그너는 "그토록 정숙했던 살로메였기 때문에 그가 세례 요한의 목을 얻기 위해 헤롯왕 앞에서 옷을 하나씩 벗는 '일곱 베일의 춤'을 추는 장면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살로메가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죠.단순하게 시작하여 복잡한 움직임으로 플롯이 바뀌는데 이는 고조되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것입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뮌헨에서 미술과 무용을 공부했으며 런던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3년간 종합예술의 기초를 쌓았다.

작품을 대할 때 새로운 상상력을 자주 도입하는 그는 배우들을 설득시키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배우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다음 의사를 타진해가는 방식이다. "이번 작품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죠.영감을 얻으려고 알카에다의 비디오를 보면서 이미지를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

이번 공연은 국립오페라단이 희귀 레퍼토리를 소개하기 위해 만든 '마이 넥스트 오페라' 시리즈의 두번째 무대로 여주인공의 역량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담한 불협화음과 무조(無調)에 가까운 곡들을 불러야하기 때문이다. 극적인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해야 하므로 연기력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무대에선 노래와 연기력을 모두 인정받은 한예진과 이지은이 번갈아 살로메역을 맡는다. 관람료 1만~9만원.학생은 반값.

1588-7890 박신영 기자/강혜림 인턴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