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의 묘미는 금강산 구경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남북출입국사무소를 통과할 때 처음 만나는 인민군 앞에서의 긴장감과 버스 안 북측 안내요원들이 주는 의외의 친근감도 빼놓을 수 없다.

운이 좋으면 북측 사람들과 함께 등산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볼 수도 있다.

2박3일 일정의 첫째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예 공연을 보기 때문에 금강산 관광은 둘쨋날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매일 오전 8시30분 숙소가 모여있는 온정각에서 한꺼번에 금강산의 예정된 코스로 버스가 출발한다.

이때 왼쪽 줄 맨 앞자리에 안내요원들이 앉기 때문에 이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려면 주변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

기자가 탄 버스의 안내요원은 아직 앳된 소녀 같은 25살의 유정씨.어렸을 때부터 발표 훈련을 많이 받는다는 북측 사람답게 청산유수같이 금강산을 소개한다.

목적지인 내금강 입구에 도착할 때쯤 '기자'라는 직업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한 유정씨는 기점인 표훈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하연터까지 함께 올라갔다.

유정씨와 함께 가장 인기가 많았던 안내원은 까무잡잡하게 잘생긴 청년인 철국씨.미혼의 여자 관광객에게 결정적인 작업 멘트를 던져 당황하게 만든다.

"그 쪽이 결혼을 안한 줄 알고 저도 아직 결혼을 안했나봅네다."

북측 여성 안내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지 유정씨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철국씨가 자꾸 신경쓰이는 눈치다.

앞서 올라가다가도 철국씨가 안보인다 싶으면 걸음을 멈춰 쉬는 척을 한다.

그러고는 여자 관광객들에 둘러싸여 올라오고 있는 철국씨가 보이면 살짝 흘겨보며 조용히 한마디를 던진다.

"협잡꾼…."

내금강의 하이라이트는 절벽 위에 아슬하게 자리잡은 보덕암.워낙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북측 안내요원들도 쉽게 가지 않는다.

하지만 힘겹게 올라가면 그만큼 보답을 하고도 남을 절경이 펼쳐진다.

내부는 토굴.겉만 건물을 씌워놓았다.

구리기둥 하나로 건물을 받쳐놨는데,바람에 날려가지 말라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627년 고구려 영류왕 때 지은 암자.현재의 건물은 1675년 고쳐 지은 것이다.

힘든 산행을 마치고 내려왔을 땐 북측이 운영하는 식당 '금강원'의 흑돼지 구이를 먹어볼 만하다.

특히 싱싱하고 연한 북측 배추에 쌈을 싸서 먹으면 우리 혀가 얼마나 조미료 맛에 찌들어 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종업원 아가씨들에게 잘보이면 그들의 수준급 노래를 직접 들을 수도 있다.

단 그러려면 "아가씨","언니"라는 말 대신 "동무","동지"라는 호칭을 꼭 붙일 것.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부탁하면 의외로 흔쾌히 북측 가요를 들려준다.

셋째날에는 우락부락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외금강에 도전한다.

온정각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온정령 고갯길을 30분 정도 달리면 만물상 입구인 만상정에 닿는다.

만상정에서 천선대까지는 약 1.5㎞.만물상 경치에 취한 세 신선이 바위가 되었다는 삼선암,솥뚜껑만한 솥뚜껑 바위,나무꾼이 도끼로 찍으면서 올라갔다는 절부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관광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천선대 문턱에 있는 90도 각도의 철계단이다.

웬만한 담력으로는 밑을 내려다보기 힘들 만큼 아찔하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휘청거리기까지 해,오도가도 못한 겁많은 관광객 때문에 종종 '인간정체' 현상이 빚어진다.

등산은 두어 시간이면 끝난다.

온정각에 도착해서는 평양 냉면을 맛볼 수 있는 '옥류관'을 찾는다.

땀 흘린 다음 먹는 평양 냉면의 시큼한 맛이 일품이다.

하지만 절대 냉면 사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하지 말 것.북측 점원들이 서슴지 않고 손님을 혼낸다.

"명 짧아지게 냉면은 왜 자르라는 겁네까? 그냥 드시라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여느 여행과 마찬가지로 아쉽다.

사흘이지만 친해진 북측 호텔 직원들과 인사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찡한 무언가가 남는다.

하지만 휴전선을 지나 인민군 대신 대한민국의 장병이 보이기 시작할 때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소리가 나오면 씁쓸한 무언가도 같이 남는다.

금강산=글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사진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