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은 날 밤,날씨는 추웠지만 내 눈물은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따스한 눈물이 나를 감싸고 내 아이들을 감싸고 내 집을 감싸고 세상을 다 감싸는 것만 같았다. 나는 드디어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하느님의 집은 눈물로 지은 집이었다."

작가 공선옥씨(44)는 2004년 성탄 전야에 춘천 죽림동성당에서 세례를 받던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스물셋에 결혼해 이십대에 이혼녀가 된 공씨는 인생에서 겪을 어려움을 그때 웬만큼 다 겪었다. 이십대 이혼녀에게 남은 거라곤 아이 둘과 가난뿐. 공씨는 그러나 가난 속에서 키운 아이들 덕분에 가톨릭과 인연을 맺게 된다.

서울 구로동 봉제공장에 다닐 땐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아이를 맡아줬던 요셉아가방의 카타리나 수녀를 만났고,작가가 돼 광주에서 살던 어느 성탄절엔 아이들과 함께 성당을 찾았다. 학교문제로 속을 썩이던 둘째가 "이제 은혜 갚는 딸이 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을 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느님,감사합니다"가 흘러나왔다. 공씨는 "나는 눈물의 힘을 믿는다"면서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던 '어떤 기운'의 정체는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설명한다.

공씨를 비롯해 박완서,박재동,신달자,오정희,전옥주,최인호,한수산씨 등 작가 8명의 가톨릭 입문기를 담은 책 '뒤늦게 만나 사랑하다'(생활성서)가 출간됐다. 박완서씨는 '나는 왜 가톨릭을 믿게 되었나'라는 글에서 장의사의 장삿속에 휘둘린 채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가톨릭신자가 됐다고 밝혔다. 천주교 영결미사는 부자든 가난하든 관계없이 고인이 이 세상을 살아냈다는 데 대한 극진한 대접을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죽을 때 우아하게 죽고 싶어서,행복할 때 감사하고,불행할 때 기도하고 싶어서,자신의 존재가 불안하게 흔들릴 때 의지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신달자씨는 30년 전 남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처음으로 들어간 혜화동성당에서 눈물로 통곡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기적처럼 눈을 떴고 신씨는 "오 주님!"을 외쳤다. 신씨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 남자를 내가 업고 있었고,나는 주님 등에 업혀 있었다"고 했다. 성당에 다닌 지 26년 만에 세례를 받은 전옥주씨,미사 구경도 못해 본 채 혼인성사를 치른 뒤 고난 가득한 예비신자 '3수(修)'를 거쳐 성당이 아니라 백두산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모래언덕에서 세례를 받은 한수산씨 등 늦깎이 신자들의 신앙 입문기가 감동을 준다.

240쪽,1만1000원.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