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11시 서울 미아3동의 청각장애인 교육기관인 서울 애화학교 강당.서울 시내는 물론 부산 대구 광주 전주 인천 등 전국에서 청각·언어장애인(농아·聾啞)과 신부,수녀,청각장애가 없는 건청인(健聽人) 신자 등 500여명이 모였다.

아시아 가톨릭의 첫 농아 사제로 지난 6일 서품된 박민서 신부(39)가 처음으로 집전하는 수화미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날 농아 신자들의 표정은 너나 없이 들떴다.

그동안 건청인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서 의사소통과 상호 교감이 완전하지 않아 답답하고 아쉬웠지만 이제는 같은 농아인끼리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신자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미사가 시작되자 박 신부가 자신을 사제의 길로 이끌어준 정순오 신부(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사제),수도회인 작은형제회 소속 엄강섭 신부,필리핀에서 농아사목을 하고 있는 일본인 사토 신부 등과 함께 단상에 올랐다.

독서와 기도,화답송,복음성가와 장엄축복 등 미사전례는 모두 수화로 진행됐고 음성통역이 병행됐다.

박 신부의 수화는 정 신부가 통역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미사지향은 농아선교회의 모든 회원과 그들의 가정을 위해 기억하고 구원을 기도하고 싶다"는 말로 미사를 시작한 박 신부는 미사 내내 평화와 자비,사랑과 용서를 강조했다.

특히 누가복음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들려주며 "마음을 다해,목숨을 다해,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강조했다.

영성체 때 성체를 나눠 주는 시간은 여느 미사의 두 배 이상 걸렸다.

건청인 사제라면 말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것을 박 신부는 일일이 수화로 표현하면서 성체를 나눠줘야 했기 때문이다.

미사강론을 맡은 정 신부는 "1940년 독일인 카리타스 수녀님이 북한 원산에서 한국 농아들에게 복음을 전한 지 67년 만에 이땅에서 첫 농아 신부가 수화미사를 봉헌하게 됐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정 신부는 또 박 신부를 향해 "신부가 됐다고 끝이 아니라 그동안 하느님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라'는 말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미사 뒤에는 꽃다발과 선물 증정에 이어 농아선교회 에파타주일학교 청소년 12명이 수화로 축하공연을 했다.

'기대'라는 제목의 생활성가를 손짓으로 노래한 이들에게 박 신부는 희망이며 큰 기대의 대상이었다.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주님 우리 통해 계획하신 일,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공연이 끝날 무렵에는 대여섯명의 어린이들이 기념사진을 담은 사인보드를 내밀며 수화로 "신부님,생일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날이 마침 박 신부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농아 신자 박수미씨(44·서울 홍은동)는 "가톨릭에 입문한 지 20년째인데 아무리 수화를 잘한다고 해도 건청인 사제의 강론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워 답답했다"면서 "이젠 달라졌다"고 기뻐했다.

경기도 김포에서 온 농아부부 장영만(49)·박용주(50)씨는 "같은 농아인 입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니 느낌이 확실하게 다가온다"면서 "김포성당에도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설렘 속에서 첫 수화미사를 준비하느라 오늘이 생일인 줄도 몰랐다"면서 "예수님은 환영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범을 보이기 위해 오셨으니 저도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