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사랑도 권력 '여름이 가기 전에'

케케묵은 소재 사랑. 그래도 여전히 영화ㆍ드라마의 단골 재료로 사랑받는 이유는 대부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강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영화 '여름이 가기 전에'(감독 성지혜, 제작 엠엔에프씨)도 사랑 얘기다.

흔히 볼 수 있는 순애보가 아닌 사랑에도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다뤘다는 점이 신선하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성지혜 감독은 프랑스영화 같은 사실적이면서 잔잔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한 소연(김보경)은 프랑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이혼남 민환(이현우)의 연락을 받는다.

민환과의 이별 때문에 상처를 안고 사는 소연에게 민환은 "바다를 보니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자신이 있는 부산으로 오겠느냐고 제안한다.

소연은 서울에서 만난 남자친구 재현(권민)에게 "가족과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한 뒤 부산으로 향한다.

다시 만난 이들은 바다가 보이는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아침 소연은 지난 밤의 달콤함을 지속하고 싶어하지만 민환은 "갑작스레 일정이 변경됐다"며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몇 시냐"고 묻는다.

항상 그랬듯이 그의 무심한 말은 그녀에게 상처가 되고 둘의 말다툼은 또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파리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 집에 머물지 않겠느냐"는 민환의 제안을 소연은 또 다시 받아들인다.

소연은 재현과 언니에게 "지도교수가 급히 찾는다"면서 갑자기 프랑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한 뒤 민환의 집으로 향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는 삼각관계라는 사랑의 형태를 통해 그 안에 존재하는 권력을 섬세하게 터치했다.

민환-소연-재현으로 이뤄진 구도에서 소연은 약자인 동시에 강자다.

민환에게 버림받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서 그와의 사랑을 다시 잇고 싶은 그녀. 민환의 말 한마디에 만사를 제쳐놓고 부산으로 갈 만큼 그녀에게 민환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반면 자신을 좋아하는 재현에게는 강자로 군림한다.

[새영화] 사랑도 권력 '여름이 가기 전에'

말을 바꿔가며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탄로나자 재현이 지켜보는 앞에서 민환과 포옹할 만큼 그를 무시하기도 한다.

영화 속 민환은 소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소연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그는 말을 바꿔가며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그녀를 둔다.

소연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민환과 소연의 관계를 규정짓는 것은 강자의 민환의 의지다.

영화 속에서 소연과 민환이 반복하는 거짓말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민환은 거짓말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소연은 외교관인 민환을 잡기 위해 여관에 묵으면서 호텔에 투숙한 것처럼 연기하고, 유부남에 대한 어머니의 순애보를 지어내기도 한다.

성 감독은 사랑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그렸다.

영화는 "성기를 만져보고 싶다"는 등의 직설적인 대사로 가득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비주얼을 담고 있지 않아 언밸런스한 느낌도 준다.

배우들의 연기보다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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