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가 스민 들판으로 저무는 가을,우수수 지는 낙엽 소리에 밤기운이 맑다.

오솔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세상을 유혹하는 듯 간지럽게 추색을 뿜어낸다.

잎을 떨군 나무들은 야트막한 기슭을 휘돌아 나가고,줄기에서는 선비의 절개가 느껴진다.

소정 변관식(1899~1970년)의 '추야산수도'(65×66cm)는 산야 풍경을 통해 고고한 이상향을 펼쳐 보이는 작품.

전통 한국화의 거장 소정을 비롯 외할아버진인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1853~1920),소림의 할아버지 임전 조정규(琳田 趙廷奎,1791~?) 등 3명의 작품전이 15~28일 서울 인사동 동산방 화랑에서 열린다.

'전통회화 명문가 3인전'이란 타이틀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져온 이들의 작품 50점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전통 한국화의 맥을 짚어보고 이들이 혼탁한 시대 속에서 빚어낸 다채롭고 격조 높은 그림들을 모아 보여주는 기획전이다.

임전 집안의 그림은 변관식에 이르러 조선회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적인 면모를 갖춰 20세기 한국 회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화풍을 철저히 따랐던 임전은 어해부문에서도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았다.

'어해도' 8폭과 '황복' 등이 수작으로 꼽힌다.

1860년 작 '금강산도' 8폭을 비롯 '고사도석인물도''화조도' 등에서도 한국화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또 임전의 화풍을 계승하면서 오원 장승업의 영향을 받은 소림은 훗날 청전 이상범이나 이당 김은호 같은 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부채그림 '관폭도'가 눈길을 끈다.

소림의 장녀가 출가해 낳은 소정은 할아버지들의 화풍을 계승했지만 훨씬 파격적인 화풍을 개척해 조선회화와 근대 한국화의 가교 역할을 한다.

'외금강산선암추색''산촌신색' 등 실경산수를 짜릿한 감성으로 뽐내는 소정 특유의 역동적인 작품도 이번 전시에 내보인다.

관람은 무료.

(02)733-587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