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코앞에 다가왔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푸른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지만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훌륭한 피서법이다.

올해는 더위를 한방에 날려줄 팩션,스릴러,추리소설들이 어느해보다 풍성하다. 최근에만 20여종이나 쏟아져 나왔다.

'눈은 진실을 알고 있다'(조르지오 팔레띠 지음,이승수 옮김,한스미디어,전2권)는 운명을 비웃는 사이코 연쇄살인범과 거기에 맞서는 경찰들의 숙명적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사고로 각막이 손상된 주인공이 낯선 이의 각막을 이식받으면서 경험하는,실제 눈에 보이는 것과 환각으로 보이는 것 사이의 기묘한 불일치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출간 4개월 만에 이탈리아 현지에서만 7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평단과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단 한번의 시선'(할런 코벤 지음,최필원 옮김,비채,전2권)은 에드가상,셰이머스상,앤소니상 등 세계 3대 미스터리문학상을 모두 받은 작가 코벤의 대표적인 스릴러물.

코벤은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친필 팬레터를 보낼 정도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15년 전쯤에 찍은 듯한 사진이 주인공 그레이스의 손에 들어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사진 속 5명 중 한 명이 자신의 남편과 무척 흡사하다고 그레이스는 느낀다.

남편에게 사진을 보여주자 남편의 얼굴빛이 금세 달라지고 그날 밤 실종된다.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손에 땀을 쥐게한다.

'사이코 패스'(안하림 지음,팬덤,전2권)는 특유의 스피디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가의 신작 미스터리물.

유영철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이코패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양심의 가책 없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행동패턴을 섬뜩할 정도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인다.

마치 실제 사건을 다루듯 섬세하게 묘사한 등장인물들과 논리적 사건전개,통쾌하면서도 극적인 반전 등 정통 스릴러물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미션플래츠'(윌리엄 랜데이 지음,최필원 옮김,북@북스)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6년간 지방검사 생활을 하다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저자의 첫 장편 스릴러다.

배경은 가상의 도시 미션 플래츠. 독자들은 작중 화자의 호흡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 변호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하지만 정작 독자들이 믿었던 이 화자를 저자는 십분 이용한다.

'외과의사'(테스 게리첸 지음,박아람 옮김,노블하우스)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직 의사 출신의 저자가 현직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메디컬 스릴러물이다.

의학지식과 기술을 갖춘 사이코패스 범인이 저지르는 전대미문의 흉악한 범죄는 '양들의 침묵'을 연상시킨다.

독일의 의학관련 추천도서 사이트에서 의대생을 위한 필수도서로 올라있으며 독일의 대표적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추천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라비린토스'(케이트 모스 지음,이창식 옮김,해냄,전2권)는 중세와 현대 프랑스를 넘나들며 성배의 진실을 새롭게 파헤친 화제작이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을 능가한다는 평가와 함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전 세계 39개국에서 이미 출판계약을 마쳤다.

인류최고의 관심사를 사랑과 배반,음모와 진실의 한복판으로 끌어낸 이 소설은 치밀한 역사고증과 탄탄한 문학적 구성력이 뒷받침되면서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올해엔 여느 때와 달리 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소설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훈민정음 암살사건'(김재희 지음,랜덤하우스중앙)은 조선 세종대왕 때 창제된 한글의 기원이 단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발상의 미스터리 소설.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원인 작가는 고조선시대부터 존재한 '가림토문자'를 이용해 세종대왕이 한글로 정립시켜 완성했다는 '가림토문자전승론'을 소설에 도입했다.

이럴 경우 한글은 1443년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단군시대에 만들어져 4000년을 넘긴 문자라는 게 밝혀져 유구한 역사성이 다시 한번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뿌리깊은 나무'(이정명 지음,밀리언하우스,전2권)는 세종 25년 훈민정음 반포를 불과 7일 앞두고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한 역사추리소설.

궁궐수비군 강채윤이 집현전 학사들의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세종이 비밀리에 스물여덟자의 문자를 창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소설에서 세종은 '중국이 아닌 스스로의 혼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훈민정음 반포 의지를 다지는 자주적인 성군으로 그려진다.

두 소설 모두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가미해 전개한 팩션(faction)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추리나 미스터리물은 아니지만 더운 여름날 차분히 읽어볼 만한 책도 있다.

원로작가 홍상화씨가 펴낸 '우리집 여인들'(랜덤하우스중앙)은 작가 자신의 친ㆍ외갓집 여인들을 통해 세계에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한국의 여심(女心)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작가는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그것들을 풍요롭게 하는 대지의 생명력으로서의 여성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울러 여성의 모성이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 현대사회를 유지시켜주는 중심축임을 강조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