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황당한 '가족'이 또 있을까.

전혀 다른 핏줄이 모여 한 가족이 된다.

그 과정이 통쾌하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가족의 탄생'(감독 김태용, 제작 블루스톰)은 아주 오래된 모계 중심사회였다면 가능한 일을 현대에 재구성한 영화다.

지금 보면 아주 기상천외한 일이 폭탄처럼 펑펑 터지지만 사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안될 것도 없는 가족의 탄생이다.

과연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웃통벗고 한판 붙어보자는 식이다.

한국사회를 비롯한 부성 중심사회가 수많은 세월을 거쳐 이뤄놓은 순혈가족주의를 통쾌하게 꼬집는 영화. 넉넉한 모성으로 사람을 받아들일 때 세상은 평안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여성이 세상의 중심이다.

독특한 주제와 생동감 있는 소재를 감칠맛 나는 대사로 배우들이 맛깔나게 버무렸다.

간드러진 목소리로 한껏 여자다운 고두심, 독특한 톤의 대사로 캐릭터를 완성한 문소리, 드라마에서와 전혀 다른 능글맞은 모습의 엄태웅, 사랑에 울고 사랑을 믿는 거침없는 연기의 공효진, 순박하고 곰살맞은 매력을 드러내는 봉태규, '사랑니'가 발굴해 쑥쑥 커가는 정유미 등 절묘한 캐릭터의 연기 조합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1. 5년 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동생 형철(엄태웅)의 전화에 미라(문소리)는 들뜬 마음으로 부산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형철 뒤에 '세상에', 동생보다 20년은 나이가 든 무신(고두심)이 새치름한 표정으로 따라 들어온다.

'자기야' '마누라야'를 닭살 돋게 외치는 두 사람이 미라는 못마땅하지만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기막힌 일은 잇달아 벌어진다.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이 낳은 여자아이 채현이 무신을 찾아 미라집에 들어온다.

이 상황이 답답해진 백수건달 형철은 대책 없이 내빼고 만다.

#2. 일본인 관광 가이드 선경(공효진). 엄마 매자(김혜옥) 때문에 남자도, 세상도 삐딱하다.

엄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는 거절하지 못하는 '정 많은' 품성 때문에 늘 선경의 마음을 괴롭힌다.

엄마 탓에 사랑을 믿지 못하는 선경은 오래된 남자친구 준호(류승범)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해 결국 떠나보내고 만다.

엄마가 낳은 번듯한 가정이 있는 유부남의 아들 경석(봉태규)을 구박하며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일삼는 선경은 외국으로 떠나기 직전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낸다.

결국 경석 때문에 주저앉게 되는 선경. 점점 그는 엄마를 닮아간다.

#3. 경석은 여자친구 채현(정유미)이 사랑스럽지만 못마땅하다.

남자친구인 자기만 봐줬으면 하지만 정이 '헤픈' 채현은 동네방네 오지랖 넓게 인정을 펼치고 다닌다.

위태로운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이별을 말하지만 헤어지지 못한다.

처음 기차에서 만났을 때처럼 채현이 오른 기차에 동승한 경석이 채현 집에 가게 된다.

채현에게는 두 명의 엄마가 있다.

이제는 주책 맞은 할머니가 된 무신과 푼수기가 여전한 미라를 채현은 모두 엄마라 부른다.

이제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 될 것을 예고한다.

심지어 10년도 더 넘은 시간이 지나 느닷없이 대문을 두드리는 형철과 그의 또다른 여자마저도.
미라와 무신은 형철로 인해 자매 같은 사이가 되고,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채연을 딸처럼 키운다.

아버지가 다른 선경과 경석은 누구보다 살가운 남매가 돼 있다.

'여고괴담-두번째 이야기'를 만들었던 김태용 감독은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 슬램댄스 영화제 최우수촬영상, 베르자우베르트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돌연 한국을 떠나 호주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후 2004년 연극 '매혹'을 연출했던 김 감독이 우연히 라디오에서 남편과 오빠를 교통사고로 잃은 올케와 시누이가 여전히 한 집에 살며 아이를 입양해 기르는 사연을 듣고 쓴 작품.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았다.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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