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출신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60)의 장편소설 '욕망'(원제 Lustㆍ문학사상사)이 번역돼 나왔다. 열리네크가 1989년 발표한 이 소설은 포르노를 연상케 하는 노골적 성묘사로 발간되자마자 '외설인가 문학인가' 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다. 이 작품이 발간된 뒤 한쪽에서는 "좌파 포르노 작가"라고 옐리네크를 비난했고, 다른쪽에서는 "누구도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탁월한 언어유희를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소설은 수많은 스키 관광객이 찾아오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계곡에 위치한 종이공장을 무대로 공장장 헤르만의 가정에서 6일간 일어난 일들을 그렸다. 헤르만은 에이즈에 대한 불안으로 창녀촌 출입이나 섹스 상대 바꾸기를 포기하고 아내 게르티만을 상대로 성적 욕구를 해소한다. 헤르만의 섹스 요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게르티는 자신이 남편의 섹스 도구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집을 나섰다가 금발의 미청년 미하엘을 만난다. 한순간 일탈을 꿈꾸지만 미하엘이 원하는 것도 그녀의 육체뿐이다. 미하엘과 그의 친구들에게 겁간을 당한 게르티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헤르만은 어느 날 아내와 섹스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아들에게 수면제를 탄 주스를 먹여 재우고, 게르티는 아버지의 축소판으로 여겨지는 아들을 질식시켜 강물에 유기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진 작가는 이 소설에서 결혼은 법적인 매춘에 불과하며, 아내는 남편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섹스를 사랑이라고 위협한다. 반면 여자는 생계와 약간의 사치를 위해 난폭한 성적 폭력을 참아내면서 TV에 나올 법한 금발 청년의 유혹에 넘어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처럼 속물근성이 다분한 공장장의 아내를 통해 여성 자신들의 우매함과 천박함이 오히려 권위주의적 가부장 사회의 존립을 더욱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나아가 불완전하고 기형적인 가족관계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를 사회적 권력구조의 문제이자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번역자인 정민영 원광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은 "이 소설에 이용되고 있는 외설성은 모든 잘못된 관계의 가면을 벗기기 위한 작가 고유의 전략적 기호"라면서 "이 기호가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지배자 남성의 신화, 지배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고 해석했다. 320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