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치고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새로 쓴 5일 저녁 의미 있는 만남이 이뤄졌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한 영화의 두 번역가가 만난 것. 칸 영화제를 비롯한 해외 마켓용 버전의 번역을 도올 김용옥 전 순천대 석좌교수가 맡기로 해서 화제를 모았지만, 이미 2월 폐막된 베를린 영화제 필름마켓 출품 당시에는 영화 전문번역가 이진영 씨가 맡아 했던 것. 두 사람은 5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통나무출판사에서 만나 '왕의 남자' 번역판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김 교수님께서 내 번역본도 보셨다고 했다. 나 역시 김 교수님이 번역하신 것을 봤다. 같은 텍스트인데도 번역가의 접근 방식에 따라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셰익스피어나 희랍의 발라드 등 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고어(古語)체 어법으로 한국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에 비해 이씨는 한국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 해도 이해하기 쉽도록 현재 쓰고 있는 단어와 구어체 중심의 어법을 구사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김 교수님은 영어 자체의 역사를 지닌 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번역 작업을 하신 반면, 난 필름마켓이라는 현실적 공간에서 동남아시아 등 비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번역 작업을 했기에 이 같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 분석했다. 실제로 이씨의 번역본으로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에 '왕의 남자'가 수출됐다. 고려대 통ㆍ번역센터에서 영상 번역 강사로도 활동중인 이씨는 "김용옥 교수님 같은 석학의 참여로 영화 번역이 얼마나 우리 문화를 알리는 작업에 나름대로 중요한 위치를 하고 있는지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옥 교수는 이진영 씨에게 '달라이 라마의 대화'라는 책을 선물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