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에서는 최근 '인륜지대사'를 치른 따뜻한 에너지가 기분좋게 묻어났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참 편안해 보인다고 한다.생활이 딱히 달라진 것은 없는데도 얼굴에서는 여유가 느껴지는 모양이다. 어찌됐든 진짜 내 편이 하나는 생긴 것 아닌가. 그런 든든함 덕분인 것 같다."


이렇듯 개인적으로도 행복지수가 최고에 달해 있는 그는 지난 1년간 일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작업을 펼쳤다.


배우 김승우. 7월 15일 개봉하는 영화 '천군'에서 그는 북한군 장교로 출연했다.


방황하는 청년 이순신을 훈련시키고 돕는 애국심에 불타는 인물.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무게감 있는 캐릭터. 그가 북한군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 모처럼 각이 딱 잡힌 멋있는 모습을 선보인다.


"이렇게 진지한 모습, '남자의 향기'(1998) 이후 처음 아닌가"라고 농을 걸었더니, "그러고보니 진짜 그렇다. 한동안 가벼운 연기만 했구나, 진짜. 아, '예스터데이(2002)가 있지 않나. '어제' 개봉했기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못 봐서 그렇지 그 영화에서도 나름대로 진지했다"며 웃었다.


역시 탁월한 유머감각이다.


▲아직까지 날 멋있게 보는 이들이 있더라


"감독님이 멋있는 북한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멋지고 잘생긴. 아직까지 날 멋있게 보는 이가 있구나 싶더라."(웃음) 실제로 그는 최근 몇년간 진지한 연기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듯 했다. '라이터를 켜라' '역전에 산다' '불어라 봄바람' 등 스크린을 통해 선보인 작품들은 한결 같이 코미디였다.


'천군'의 북한군 엘리트 장교 역이 대단히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


"근작들에서 원없이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감독님께 나를 철저히 가둬달라고 부탁했다. 스스로가 제어당하려고 했다."


촬영을 앞두고 그는 많은 탈북자들을 만났다.


"각종 직업군을 만났다.그것 아는가. 북한에도 오렌지족이 있는 것. 거기 용어로 '놀새'라고 하더라. 북에서 놀새들은 남한으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더라. 화이트칼라이면서 아주 재미있게 생활한다. 진짜 북한에서 오셨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이렇듯 만나기는 여러 부류를 만났지만 극중 그의 캐릭터는 오직 조국과 민족만을 생각하는 강직한 캐릭터다.


"남북한은 총체적인 난국에서는 결국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가 의미를 갖게 된다."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판타지의 재미를 주지만 동시에 남북한이 하나임을 강조하는 무게감도 갖고 있다는 것.


문득 군복무는 어디서 했냐고 물었다.


"꼭 묻더라"며 눈을 흘긴 그는 "송추에서 방위로 복무했다. 시력이 나빠서였다. 지금은 라식을 했지만"이라며 웃었다.


▲한참 신소리를 늘어놓다 슛 들어가려니 힘들었다.사실 김승우는 최근 영화에서 타율이 저조했다.나름대로 잘 될 것이라 믿었던 작품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위축되는 부분이 왜 없겠나.늘 그런 부담감에 시달린다.한편으로는, 일이 안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이긴 하지만 항상 개봉을 앞두고 악재가 있었던 것도 같다. '예스터데이' 개봉할 때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할지 누가 알았냐 말이다. 그때 설기현이 골 넣을 때 감격에 겨워 울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더라."(웃음) 그런 이유로 '천군'을 선택하기도 했다."(일련의 실패로)


신중을 기해 작품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참 부담 없이 찍었다.국민배우 박중훈 있지, 든든한 황정민 공효진 있지. 난 그저 묻어가면 됐다.350만명이 손익분기점이라는데 난 한 50만명만 책임지면 되지 않을까."(웃음)


그러나 절친한 박중훈과의 작업이 때로는 작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사실 힘든 촬영하면서 친한 사람하고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촬영에 지장을 줄줄은 몰랐다. 진지한 신 찍기 전에 신소리 한참 늘어놓다가 슛 들어가려니 못할 짓이더라. 또 둘다 한번 웃음이 터지면 쉽게 멈추지 않기 때문에 스태프한테 미안한 적도 많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촬영장에서 서로 대화를 자제했다."(웃음)


다분히 행복한 엄살. 다른 말로 하면 '천군' 작업이 아주 즐거웠다는 얘기 아닌가.안팎으로 얼굴이 필 수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