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윤기(56)씨의 창작집 「노래의 날개」(민음사 刊)와 연작 장편소설 「내 시대의 초상」(문학과지성사 刊)이 동시에 나왔다. 작가의 네번째 창작집인「노래의 날개」는 9편의 단편이 실렸다. 표제작에서 '절섬'으로 들어간 '나'는 '비상이 든 노래책'에 관해 듣는다. 한 나라에 슬픈 노래를 잘 짓는 시인이 두 명 살았는데 그 절실함 때문에 듣는 이마다 모두 애가 끊어져 죽는다는 것이다. 비상 든 노래인 셈이다. 내 노래도 그렇게 지어 부르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하인 선생'은 나에게 돌을 하나씩 주워 살림집 마당에 놓도록 이른다. 언제도 보람이 있을 수 없는 그 돌 나르기는 내 노래의 '날개'가 될 것 같다고 느낀다. '옛 이야기'는 소월의 애절한 시 '옛 이야기'를 즐겨 부르는 오랜 친구들의 이야기이며, '봄날은 간다'는 시간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 만큼 잔인한 노래가 없음을 귀띔해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씨는 "유행가의 노랫말들이 요즘들어 마음에 절실하게 묻어난다"며 "노래는 스치듯이 지나가는 그 짧은 순간 물물의 궁극적 실재를 투욱 건드리는 것 같다"고 했다. 「내 시대의 초상」은 "소설은 글 속에 숨은 그림을 담아두는 것"이라는 작가 자신의 소설미학을 드러낸 작품이다. '샘이 너무 깊은 물'은 열다섯살 처녀 때 임금님께 샘물 한 바가지 올리고 들은 치하말씀 한마디가 너무 황송해 80평생을 그 임금님 만을 생각하며 홀로 샘을 지키다 죽은 '새미 할매'의 이야기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은 종합상사의 전무이사 자리까지 올랐지만 조직의 배신으로 반강제 퇴직한 한 남자의 행방불명 사건이 드러내주는 인간 삶의 비루함을 담아냈다. 작가는 1977년 소설로 등단했지만 번역과 인문.사회과학의 공부에 몰두하느라 90년대 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펼쳤다. 「나비넥타이」「두물머리」등이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리스.로마신화 소개서를 여럿 펴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000년 소설집 「두물머리」이후 3년만에 나온 작품집인데 ▲사실 젊은 후배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돈 된다고 신화만 쓰느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내 원래 본업은 '소설가'이다. 이번 소설집은 주변의 비판에 대한 '항의성 비아냥거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은 보통 30-40대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데 50대가 되면 그렇게 쓸 거리가 떨어진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제부턴 온전한 상상의 세계를 담은 '진짜' 소설을 써야 하는데, 이번의 두 작품은 그런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번에 2권의 소설집을 동시에 낸 의도는 ▲보통 단편이 장편에 비해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과 단편집을 동시에 출간해 두 개의 얼굴을 대비해 보고 싶었다. 장편이 '거시적' 이야기를 쓴다면 단편은 '미시적'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도에서 두 권을 한꺼번에 내봤다. --단편과 장편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단편에는 사회를 향해 무언가를 가르치고 계몽하려 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 녹아있다. 40대까진 상대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하길 좋아했다. 단편에는 그런 자세를 버리고 '노래'에 가까운 문장, 사유가 물흐르듯 아름다운 글을 쓰고자 했다. 독자들은 내가 심어놓은 '이정표'를 따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장편을 이루는 4편의 글은 '왕조-양반-조직-유목'으로 대별되는 시대의 가치관 또는 '초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는 '유목'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조직'의 시대를 살고 있는 부모들은 그들을 권위로 억압하려 한다.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세대 간 갈등의 원인이 그런 시대의 변화를 읽지못하는 데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과 신화를 동시에 쓰고 있는데 ▲소설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신화는 '교사'의 입장에서 쓰고 있다. 사실 문학과 신화는 긴밀히 맞닿아 있다. 문학은 끊임없이 신화와 성서를 패러디해 왔고, 문학은 어느 경지에 오르면 신화적 현실이 된다. 나의 소설쓰기는 '우리 시대의 신화를 만드는 가냘픈 몸부림'이다. --근황과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강의는 그만두고 글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강의를 하게 되면 '동어반복'을 하게 되고 이는 곧 '자기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얼굴이 알려져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알아볼 때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헬레니즘(그리스 문화예술)의 정신세계, 신화를 소개한 데 대해선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 뿐아니라 몽골, 중국 등 전세계의 신화에 대해 쓴 후 '세계신화전집'을 펴낼 계획이다. 중단편 소설집을 매년 펴내는 한편 장편도 꾸준히 쓸 예정이다. 앞으로 100권 이상은 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함보현 기자 hanarmd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