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각국의 지식.문화역량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지난 2001년부터 이 도서전에 대한 관심이 차츰 퇴조하기 시작했고 올해 역시그러한 추세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21세기 지식산업 시대를 맞아 출판.문화와 방계 지식산업에 쏟아 부어진 각 국의 관심을 드러내주기에는부족함이 없었다. 도서전의 화두는 단연 출판의 영역확장이었다. 독일출판사 베네딕 타셴이 무하마드 알리의 평전 'Greatest of All Time'의 출간 홍보를 위해 전시관 내 특설링을설치하고 알리와 측근인사들을 직접 초청, 기자회견과 독자와의 만남 등을 마련한것은 산업적 출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덕분에 베네딕 타셴이 자리잡은 전시관에는 각국 유수의 TV와 뉴스통신사 기자들로 연일 발디딜 틈이 없었고, 방송기자들은 특설링 위로 올라가 현장 리포트를담아내기에 분주했다. 알리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와 현역시절 알리의 경기장면을 보여주는 흑백 스크린 앞에는 관람객의 발길이 그칠 줄을 몰랐다. '뷔혀'라는 서평잡지의 출간을 준비하는 알렉산더 블로카씨는 "출판산업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고 평했다. 전세계 유명 출판사들이 부스를 차린 8관 국제홀의 경우, 상당수 업체가 진열대를 아동서적에 할애하고 있었다. 특히 동남아와 중국 등 아시아계 업체들은 영어 학습서와 비디오의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영국 등 선진국 출판사들은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감촉이 특별한 서적 등 음성과촉각을 결합한 신개념 도서들을 전시, 주목을 받았고, 적지않은 업체들이 서적 홍보를 위해 대형 스크린를 내걸거나 캐릭터 복장을 차려입은 홍보 도우미들을 운용하며엔터테인먼트에 마케팅을 결합시키는 모습이었다. 도서전의 최고 관심국은 단연 그 해의 '주빈국'으로 올해는 러시아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행사는 '초라하다'는 평을 받았다. 전시관 포룸에서 열리고있는 러시아의주빈국 프로그램은 일반적인 도서전과 뜨개질 등 전통 공예품의 전시 등 뿐으로 '썰렁'했고 100여명의 작가들이 초청돼 기자간담회가 열렸지만 기자들은 거의 모이지않아 무관심을 반영했다. 일부 독일언론에서 러시아 문학도서들에 대해 "고전보다는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번역돼 나온 것이 특징"이라고 전했다. 다만 도서전 개막 전날 열린 러시아의 '갈라콘서트'에는 각국의 출판관계자와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몰려 수준 높은 공연을 지켜보았다. 이정일 출판문화협회장은 "러시아의 대단한 공연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주빈국 행사는 도서전도 도서전이지만 문화예술 전반의 수준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오히려 각 국 언론의 깊은 관심이 반영된 행사는 내년 주빈국으로 선정된 '아랍국가들'의 기자회견이었다. 9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회견에는 각국의 미디어에서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아랍 교육문화과학기구 동맹'의 몬지 부스니나 사무총장은 발제를 통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책인 '코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 강한 인상을 심었다. 그는 "모더니즘에 포획된 서구인들이 아랍세계를 매우 단일한 공동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이슬람을 하나로 보고 이슬람과 아랍을 동일시한데서 온 것"이라며 서구의 무지를 꼬집었다. 특히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언급, "서기 6세기의 시와 7세기의 운문, 8세기의산문 등 코란의 문장을 학생들에게 여전히 읽히고 가르치고 있다"며 "코란이야말로진정한 '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모습은 9.11 사건이후 미국과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온 독일언론에긍정적으로 비쳐졌다. 독일 언론인들은 "발제에 아랍세계의 자부심이 묻어나 있다"고 평했다. 재독한인연합회 전 회장인 윤남수씨는 "연중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메세(Messe.전시회)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이 도서전으로 메세의 수입이 프랑크푸르트 전체수입의3분의 1에 달한다"며 "전시회 자체가 시를 전 세계에 알리고 지탱시키는 핵심역량"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시아관 구석편에 한국관을 설치했으며 한국만화콘텐츠진흥원은 만화.오락콘텐츠관에 국가관을 마련했다. 이와 별도로 영진닷컴은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국제관에 부스를 얻었다. 그러나 아시아관 내 한국관은 옆 중국관이나 일본관에 비해 규모도 작고, 서적배치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꾸며져 있어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였다. 관람객들의발길도 뜸한 편이었다. 다만 아시아 출판후발국들은 한국의 출판경향을 벤치마킹하는데 공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인도네시아 에르랑가 출판사 그레이스 토빙 영업컨설턴트는 "한국은 동남아 출판시장의 모델"이라며 "우리는 문화가 다른 유럽의 책을 직접 수입하기 보다는한국 같은 출판 선진국의 책을 먼저 수입하는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아동서에 관심이 많아 여러차례 한국업체와 상담했다고 귀띔했다. 말레이시아 하지 샤리 압둘라 출판산업협회 대표는 "말레이시아 출판관계자들이수백명 왔으며 한국 출판사들의 출판경향을 자세히 알아볼 계획"이라며 "예전에 비해 이슬람의 관심이 많이 퇴조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국제관에 부스를 차린 영진닷컴은 20여개사와의 상담을 진행시켰으며주로 아동실용서와 외국어서적의 홍보에 주력했다. 한국관의 문학과지성사는 한국작가사진과 함께 한국 문학작품을, 사계절 출판사는 한국생활사 시리즈를 각각 전시했다. 해외저작권 에이전시인 북코스모스의 홍순철 주임은 매일 10건이상 60여건의 수출수입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고, 사계절 출판사 강응찬 주간은 "한국생활사시리즈를 이번 처음 가져왔는데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만화 콘테츠진흥원이 차려놓은 만화관련 국가관은 이번 행사기간 수백만달러의계약을 따낼 것으로 보여 가장 알짜 전시관으로 꼽혔다. 진흥원의 박성식 과장은 "아직은 만화서적의 계약이 가장 높은 편이지만 온라인.모바일 게임 등 만화관련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외국의 온라인 기반기술이 높아짐에 따라 굉장한 유망분야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