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의 불안과 좌절,소외의 문제를 실존적 관점에서 표현한 작가 프란츠 카프카 원작의 '원숭이,빨간 피터'(자우출판사)가 출간됐다. '어느 학술원에의 보고'가 원제목인 이 작품은 연극배우 고 추송웅씨가 열연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카프카 특유의 난해하고 모호한 문장을 일상적인 우리말로 다듬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꾸며진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책은 '빨간 피터'가 자신이 인간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역경을 감개무량한 어조로 보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숲속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한 원숭이가 어느 날 두 발의 총을 맞고 인간들에게 생포된다. 철창에 갇힌 원숭이는 뺨에 생긴 새빨간 탄흔 때문에 '빨간 피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철창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피터'는 문득 원숭이의 본성을 벗어던지고 인간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사람들로부터 악수하는 법,침뱉는 법 등을 배워 나가던 '피터'는 어느 날 쓴 독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부지불식간에 인간의 언어로 '헬로'라고 소리친다. 인간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점점 더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진 '피터'는 서커스단의 일원으로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작품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보면 '피터'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원숭이일 뿐임을 알 수 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면 높일수록 '빨간 피터'는 여전히 원숭이의 상태에 머물고 있을 뿐이라는 증거들이 표면으로 돌출된다. 결론적으로 '빨간 피터'는 '인간으로 거듭난 행복한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에게 사로잡혀 원숭이의 자유분방한 정체성을 상실한 '가련한 원숭이'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카프카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숭이의 소중한 정체성을 상실한 '빨간 피터'처럼 우리 현대인들도 억압적인 현실에 순응하면서 참된 자아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