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고독이 전율처럼 지나갑니다./무료한 시간이 무섭게 흘러갑니다./시간의 적막 속에서/속수무책,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아, 이 공포,/콘크리트 같은 적막 속을/고독이 전율처럼 머물고 있습니다." 8일 작고한 조병화 시인은 최근 출간한 「편운재에서 보낸 편지」(문학수첩刊)제3권의 마지막 서신에서 죽음을 예감한 노시인의 회한과 고독을 한 편의 시를 통해 절절하게 드러냈다. 조 시인은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산호장刊)으로 등단한 뒤 지난해 5월 출간한 「남은 세월의 이삭」(동문선刊)까지 모두 52권의 창작시집을 발표했다.시선집과 수필집 등을 합치면 등단 후 50여년간 발표한 책이 160여권에 이른다. 3년 전 서울대 인문정보연구소가 1895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문학 100년을 CD롬으로 자료화한 결과, 조 시인이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시집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조 시인은 조사기간에 시선집을 포함, 모두 88권의 시집을 냈다. 2위인 고 은 시인의 38권, 3위 김남조 시인의 34권을 월등히 앞선다. 그의 이같은 다산성(多産性)은 그의 시가 일상 속에서 말하듯, 편지 쓰듯 쉽고 편하게 쓰여진다는 데서 연유한다. 시인 스스로도 생전에 "내면의 소리가 날숨처럼 나왔다"면서 마치 숨쉬듯 시를 써왔다고 자주 밝혔다. 도쿄(東京)고등사범학교를 나와 한때 고교에서 물리교사를 했던 조 시인은 당시척박했던 교육환경을 안타까워하며 "다시 태어나면 자연과학도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하곤 했다. 1955년 발표한 다섯번째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정음사刊)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국내 출판계에 연시풍 시집의 베스트셀러 진입 전통을 세웠다. 그는 인간의 실존적 삶을 다룬 순수시만을 일관되게 써왔다. 이로 인해 격동기를 살아온 시인으로서 민족문제나 역사성을 지나치게 외면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의 이같은 성향을 두고 시인 김수영은 "넌 부르주아, 난 프롤레타리아"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씨는 "말하듯, 편지하듯 씌어진 것이 조병화 시의 형태적 특징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나날의 삶 속에서 숱하게 겪는 극히 통상적인 정감 경험의 토로가 시의 내용을 이룬다"면서 "그의 시에 나타난 고독은 몸서리치도록 처절하거나 다스릴 수 없는 폭동과 같은 것이 아니라 순치와 애무가 가능하며, 적당히 귀엽기까지 하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씨는 "그의 시가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수십년간 생명력을 이어온 것은 그의 시가 인생이라는 크고 어려운 주제를 탐구하면서도 그것을 평이한 비유와 소박한 어법으로 노래하기 때문"이라면서 "그의 시는 사랑, 이별과 애수, 긍정과 달관, 어머니와 고향, 갈망과 보헤미안, 인간애, 고독과 허무의 시 등으로 요약되며 인간주의, 낭만주의, 순응주의, 영원주의에 정신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평했다. 조 시인은 시인협회 회장, 문인협회 이사장,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고, 세계시인대회에서 계관시인으로 추대되는 등 명예를 누렸다. 빈소를 찾은 이근배(시인협회 회장) 시인은 "고인은 덕성과 친화력으로 문단을 이끌었으며, 문학상과 문학관을 미리 준비하는 등 문인으로서 하실 일을 생전에 차곡차곡 챙겨놓고 가셨다"며 애도했다. 조 시인은 팔순을 맞아 펴낸 쉰번째 시집 「고요한 귀향」(시와시학사刊)에 실린 '꿈의 귀향'에서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 나왔다가/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고 묘비명을 써놓았다.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