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지금 선거철이다. 4년 임기의 제31대 총무원장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무척 다른 분위기다. 선거가 눈앞(24일)에 다가왔지만 아직 예전같은 물리적 충돌이나 금전수수 등의 잡음은 들리지 않고 있다. 종단이 안정돼 있는데다 사회 전반의 개혁 분위기도 조계종의 '조용한 선거'에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종하 스님(65·서울 관음사 주지)과 법장 스님(62·수덕사 주지).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범어문중과 덕숭문중 출신이다. 해인사에서 고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종하 스님은 조계종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행정통임을 자처한다. 아홉번의 중앙종회 의원과 두 번의 중앙종회 의장,불교방송 이사장을 지낸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법장 스님도 만만치 않다. 총무원의 사회부장 재무부장을 거쳐 중앙종회 사무처장으로 일했고 전국본사주지연합회장과 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등 종단 안팎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펴왔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이전 같은 문중간 가시적 대결양상이 줄어든 대신 선거공약을 중심으로 한 정책대결이 두드러졌다는 점.지난 주말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서 열린 최초의 정책토론회는 조계종 선거의 달라진 면모를 보여준 자리였다. 원론적인 답변으로 인해 두 후보간의 차별성이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승려 재교육,북한산 관통도로 문제를 비롯한 수행환경 등 종단의 현안이 두루 논의됐다. 특히 국장급 종무직 임용 등 비구니의 역할 확대와 비구니부(部) 신설,승려 노후복지대책 마련 등은 주목되는 대목이다. 한편 법장 스님은 별도의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을 통한 세계 포교를 적극화하기 위해 인터넷 포교센터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한국 불교를 체험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수행관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종하 스님은 조계종에서 가장 행정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서 미래를 위한 종무행정의 표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같은 변화 바람에도 불구하고 문중 표의 향방은 여전히 중요한 열쇠다. 특히 해인사 범어사 쌍계사 화엄사 신흥사 등 불교세가 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범어문중을 업고 있는 종하 스님은 선거 막판에 은근히 문중 분위기가 작용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3백21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중앙종회 의원(81명)을 뺀 교구별 선거인단 구성에는 각 교구본사 주지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얼마나 벗어나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문중세가 다소 약한 법장 스님측은 "지금은 해인사에서도 주지 스님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만큼 몰표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