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산이 이래?


가도가도 정상이 보이질 않으니...


40대의 한 산행객이 기어이 푸념을 쏟아낸다.


숨은 이미 턱에까지 차오른 상태.


모자 밖으로 흘러내린 땀방울은 귀밑머리에 뭉툭한 고드름이 되어 맺혀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비로봉까지 1.4km.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초반 1.5km 구간에서 힘을 좀 뺀 탓인지, 그리 길지 않은 마지막 구간 중간쯤의 산행객 모두 고된 모습으로 숨을 몰아쉰다.


'밉지 않은 거짓말'에 여러번 속았을 법도 하다.


'20분만 더 가면 된다'거나 '거의 다왔다'는 등 앞선 사람들의 말은 지친 발걸음에 힘을 돋워주게 마련이지만 이 구간 만큼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산행길도 없는 것 같다.


적멸보궁에서 입산통제소 바로 아래 좁은 안부까지의 짧고 완만한 내리막을 제외하면 내내 깔딱지대.


땅이 벌떡 일어선 것처럼 가팔라 5분 걷고 1분 쉬고를 반복한다.


스패츠를 신지 않는게 후회될 정도로 두툼하게 쌓인 눈도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그러나 마침내 오른 비로봉(1천5백63.4m) 정상.


기대밖으로 밋밋한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지만, 자욱한 안개구름 반대편으로 눈을 돌려 내려다 보는 전망은 힘든 산행의 순간들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밀려드는 파도처럼 겹겹이 둘러 싸인 굵은 산줄기.


그 한가운데 오똑하게 자리한 적멸보궁 지붕위에 쌓인 눈이 보석처럼 빛난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의 꽃술 자리라는 얘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눈꽃은 태백산 등에 미치지 못하지만, 적멸보궁쪽의 전망은 그 어떤 산 정상도 따를 수 없다"는 한 산행객의 평이 오대산 겨울산행의 멋을 함축한다.


상왕봉과 북대사를 거치는 하산길을 버리고, 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차분한 마음으로 하는 절집 탐방 시간이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도 명당중의 명당임을 알수 있는 이곳의 적멸보궁.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정선 정암사와 함께 5대 적멸보궁(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당나라 유학후 귀국할 때 가져온 정골사리를 봉안했다고 한다.


불상을 모시지 않은 전각은 단촐하지만 귀품이 있어 보인다.


부처의 보호를 믿는지 과자부스러기를 먹으려 낼름 손바닥에 앉는 곤줄박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다음은 상원사.


월정사와 함께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 예외적으로 왕실원찰로 지정돼 지원받았다는 사찰이다.


동종(국보 36호)과 목조 문수동자상(국보 221호) 등을 볼 수 있다.


목조 문수동자상은 세조와 관계깊다.


피부병을 앓던 세조는 상원사 입구 계곡에서 목욕을 했는데 홀연히 나타난 사미승이 몸을 씻어준 이후 피부병이 사라졌다.


세조는 "문수보살을 보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사미승의 모습을 불상으로 조성케 했다.


그것이 바로 상원사 문수동자상이라는 것이다.


뒷머리를 두가닥으로 뭉툭하게 묶고 앉아 있는 문수동자상의 모습이 꽤나 익살스럽게 보인다.


상원사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는 월정사 역시 자장스님이 세운 고찰.


당우는 전쟁통에 모두 불타 새로 지은 것이고, 중창불사가 한창이어서 예스런 멋을 느끼기 어렵지만 널찍한 경내가 시원스러우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를 풍긴다.


본당인 적광전 앞뜰에 서 있는 팔각구층석탑(보물 48호)이 여느 사찰의 탑과는 달라 보인다.


고려시대의 탑양식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월정사에는 이밖에 석조보살좌상(보물 139호), 상원사 목조 문수동자상 복장유물 등 불교 문화유산들이 많이 있다.


월정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은 전나무숲길.


일주문에서부터 이어지는 이 전나무숲길은 중년의 부부도 젊었을 적 연인사이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길로 한겨울 오대산 나들이의 낭만을 더해준다.


오대산(평창)=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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