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정보통신 기술을 앞세운 신경제의 강력한 힘이 왜 갑자기 꺾여 버렸을까. 최근 2∼3년간 계속된 경기침체는 언제쯤 끝이 날까. 이같은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로버트 브레너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세계 경제는 당분간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신경제는 일시적인 환상이었을 뿐 70년대초 이후의 장기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가 쓴 '붐 앤 버블'(정성진 옮김, 아침이슬, 1만3천9백원)은 최근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의 침체 이유를 이런 시각에서 분석한 연구서다. 그는 이 책에서 최근의 경기침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며 70년대 초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장기불황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년간의 경기침체는 제조업 부문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지금의 경기침체 역시 신경제가 일으킨 거품이 뿌리 깊은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주가가 급상승하던 지난 97∼2000년 사이에 금융업을 제외한 미국 기업의 이윤율은 20%나 떨어졌다. 과잉투자 과잉생산이 이윤을 떨어뜨리고 결국 주가폭락 및 경기침체를 가져왔다는 논리다. 특히 신경제의 주축을 이뤘던 TMT(기술 미디어 통신) 산업의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은 심각했고 주가 하락의 폭도 충격적이었다. 주가 상승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 봄 통신산업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 미만이었지만 해당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2조7천억달러, 미국 전체 비금융법인 시가총액의 15%에 육박했다. 그러나 올해 중반까지 통신주의 주가는 폭락했고 2조5천억달러가 날아가 버렸다. 불과 1년 반 사이에 60개 통신회사가 파산했다. 또 5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주가 상승에 따른 투기적 거품이 주도한 시기에 생산된 설비 장비 소프트웨어의 과잉상태가 심화되면서 결국 이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브레너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1999∼2000년 한국 경제가 급속한 수출 증가에 힘입어 강력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이 역시 환상일 뿐이었다는 것. 한국산 첨단기술 부품을 사주던 미국의 정보.통신기업들이 조만간 꺼질 운명의 주가 거품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2000년 중반부터 미국 주가가 급락하면서 한국 경제 역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한국 경제가 정부의 경기부양과 소비지출 증대에 의해 부분적으로 안정되고는 있지만 "한국 역시 불황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책을 번역한 정성진씨는 "디지털 혁명과 신경제를 두고 경기순환의 종언이나 자본주의의 구조변화라고 단정해온 주류 경제학자들의 몰역사적 시각을 교정하는 해독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