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통치권자의 연애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의 영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지난95년 마이클 더글러스와 아네트 베닝이 주연한 "대통령의 연인"과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56년 율 브리너와 데보라 커 주연의 "왕과 나"가 그랬다.

대통령을 상업영화의 소재로 삼아도 흥행이 될 만큼 정치적 평등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토양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영화계는 늦었지만 이제서야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내놓았다.

안성기와 최지우가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피아노치는 대통령"(전만배 감독)은 소재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지난94년 "남부군"에서 빨치산이 아군으로 등장했던 사실에 견줄만 하다.

이 영화는 한민욱대통령(안성기)이 여중생 딸의 담임선생 최은수(최지우)와 갖는 연애담이다.

통치권자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에 앵글을 맞췄다.

제목이 시사하듯,극중의 대통령은 국민의 바람이 투영된 "부드럽고 친근한" 지도자상이다.

두려움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이 땅의 대통령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한 대통령은 할리우드 영화 "모정"의 주제곡 "러브 이즈 매니 스프렌디드씽"을 피아노로 연주하고,최신 유행하는 춤을 추며,잠행길에서 부랑자들과 어울려 소주를 나눈다.

"대통령의 연인"에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창조한 춤 잘추고 똑똑하며 재미있는 미남대통령 캐릭터와 유사하다.

외동딸과 상처(喪妻)한 홀아비대통령이란 설정에서도 두 영화는 닮았다.

또 여선생과 통치권자의 사랑은 "왕과 나"의 구도와 흡사하다.

때문에 영화속 로맨스는 앞선 두 할리우드영화의 궤적을 따른다.

여성이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대통령(왕)은 모욕을 주는 여자를 사랑한다.

여기서는 최선생이 딸의 잘못에 대한 벌로 한대통령에게 고구려 유리왕의 고대가요 "황조가"를 1백번 쓰는 숙제를 내는 악연으로 시작된다.

대통령과 평민이란 신분격차에서 오는 긴장감이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평등주의에 기초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갈등의 골은 그리 깊지 않다.

"왕과나"에선 두 사람이 신분차외에도 서구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전제주의란 문화적 충돌을 극복해야 했고 "대통령의 연인"에선 대선구도와 맞물린 정치적 공세를 이겨내야 했다.

이 영화속의 연애는 단순한 스캔들 차원에 머무른다.

지나치게 단선적인 구도는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전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대통령의 연인"에 앞서 7년전에 완성됐다."며 "로맨틱코미디란 장르의 특성상 원작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아노치는 대통령"과 "대통령의 연인"에선 대통령이 정치적 허식을 버리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스캔들을 용서받는다.

정직함이야말로 이 시대 대통령의 덕목임을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안성기는 위엄을 갖췄으면서도 부드러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체현했다.

반면 최지우는 대통령의 상대역으로는 성숙미가 부족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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