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뒤집어졌다. 한반도는 물구나무섰다. 아시아로 향한 '코쟁이'의 시선엔 탐욕이 담겼다. 자화상의 인물은 해골을 손에 들었다. 김차섭(62)씨. 그의 그림에는 강한 저항의식이 깔려 있다. 문명을 특유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비판한다.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캔버스에 치열하게 쏟아내는 것이다. 그는 삶과 작업이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25일부터 11월 17일까지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어 이런 예술세계를 펼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30여년의 작품을 망라하는 것이다. 나이 예순을 넘겼지만 그림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정열이 느껴진다. 그는 1963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이름 석 자만 대도 금방 알 수 있는 화단의 중진들이 그와 동문수학했다. 김씨는 이들과 더불어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의 화단을 주도했다. 앵포르멜, 미니멀리즘, 개념미술의 실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화단 중심에서 비켜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 앞에 영악해지고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지만 그는 나 몰라라 한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미술단체 AG그룹에서 제명당했을 때의 깐깐함과 저항기질이 아직도 펄펄하게 살아 있다.지난 74년에 도미했던 김씨는 90년 영구 귀국해 강원도 산간에 칩거중이다. 문예진흥원이 '한국대표작가초대전'의 올해 작가로 김차섭을 선정한 것은 그래서 타당하다. 이 초대전은 한국미술사에 기여했음에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중진원로작가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전시명 '오디세이'에는 전시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번 출품작은 1968년에 그려진 추상적 자화상을 비롯해 도미 후의 기하학적 에칭작업, 80년대 방황과 성찰의 자화상, 90년대의 신표현주의 작품까지 두루 포함한다. 80년대에 주로 제작된 종이컵 시리즈도 주목할만 하다. 이러는 동안 그는 국내미술 흐름과 무관하게 작품세계를 일궜다. 전시작은 '자화상' '녹색' '말무덤' '제3의 본성' 등. 귀국 후의 작품은 정착지와 연결지으면 확실히 보인다. 휴전선이 지척인 곳에 아내(화가 김명희씨)와 함께 둥지를 틀고 한국의 현실은 물론 문명의 현주소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과감한 뒤집기에 나선다. '바른 방향'(97년작) '동북아시아'(99년)는 세계지도나 한반도지도를 거꾸로 형상화해 서구중심 사고와 태도에 도전장을 낸다. 깨진 칠판에 그린 '비전'은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이다. 전시 부대행사로 김씨의 강연회가 11월 7일 오후 2시에 마련된다. ☎ 760-4601~8.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