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이른 아침. 스위스의 작은 마을 브리그(Brig)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산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떼고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졌지만 알프스의 빙하를 볼 수 있다는 작은 설렘을 가지고 만난 이들. 알프스 최장의 빙하,알레취(Aletch) 빙하를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길이 23.3km,총 면적 118평방km. 여의도 면적의 20배가 넘는 광활한 지역이 온통 두터운 얼음층으로 덮인 곳이 알레취 빙하다. 알프스산맥에서 발견되는 많은 빙하들 가운데 최장의 규모. 이 빙하가 지난 해 12월 헬싱키에서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발표되는 경사를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9월 스위스 정부와 관광청은 세계 20여 개국 언론인들을 스위스로 불러모아 빙하를 체험하고 알리는 특별한 이벤트를 벌였다. 3백 여 명이 모인 이 행사는 알레취 빙하를 중심으로 펼쳐진 스위스의 자연을 맛보는 프로그램들만으로 내실을 기했다. 스위스 중남부 융프라우(Jungfrau) 지방에서 알레치 지방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알레취 빙하. 크고 작은 강들과 주변의 숲들이 수 천년 동안 얼어붙어 형성된 거대한 얼음층이다. 이번 행사는 특히 브리그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하는 빙하 트레킹 루트를 소개하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트레킹은 브리그에서 곤돌라를 타고 베트머알프(Bettmeralp)까지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10여 분 동안 발 아래로 알프스의 초원과 산,마을의 풍경이 펼쳐진다. 워낙 고산지를 빠른 속도로 오르는 탓에 비행기를 타고 있는 듯 귀가 멍해지기도 하는 색다른 경험이 함께 한다. 베트머알프에서 알레취 빙하를 포함한 트레킹 여정은 다양한 루트를 선택해 코스를 조절할 수 있다. 코스마다 다르지만 대개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1박2일이 걸리는 일정. 여행자들은 빙하와 함께 짙은 녹음과 코끝이 매워질 만큼 맑은 공기를 내 뿜는 알레취,호수 등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게 된다. 베트머알프 곤돌라역에서 알레취 빙하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해발 고도가 높고 강수량이 적은 탓에 기괴하게 깎여 내려간 암석들 사이로 난 길. 좌우로 병풍처럼 눈 덮인 봉우리들이 둘러져 있어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 봉우리 사이로 알레취 빙하는 마치 거대한 물길이 얼어붙은 듯 흐르고 있다. 2백 여m 위에서 빙하를 내려다보는 탓에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함. 마주한 산봉우리까지의 거리도 1.8km에 이른다. 여행자들이 빙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 곳은 해발 3천 여m 지점. 왼편으로 해발 3천3백m의 에기스봉(Eggishorn)과 오른편으로는 융프라우를 만날 수 있다. 몇 몇은 신기한 듯 한 참을 걸어 내려가 빙하를 발로 건드려 보기도 하지만 사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겉으로는 얼음층이 덮인 듯 하지만 얼음이 꺼지면 천길 낭떠러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봉들이 거느렸던 작은 봉우리들은 모두 이 얼음층에 파 묻혀 버린 셈이다. 알레취 빙하를 벗어나 빼곡한 전나무 숲길을 지나면 알레취 숲에 이르게 된다. 야생의 알프스로 들어가는 이 루트는 호수와 넓은 초원을 지나기도 해 다양한 식생과 고산환경을 만나 볼 수 있다. 그 길 곳곳에 통나무로 지어진 작은 카페들이 알프스의 일부가 되어 서 있다. 한편 간단한 식사와 따뜻한 커피가 있어 여행자들의 좋은 쉼터가 되어 준다. 글=남기환/취재협조=스위스 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02-739-0034) 알레취 빙하에 이르는 경로=알레취 빙하에 도달하는 데는 융프라우와 브리그를 관문으로 삼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융프라우로 향하는 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융프라우요흐 역을 거친다. 1912년에 건설된 융프라우 철도는 철도기술의 걸작으로까지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