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는 국가간 물류 이동의 대표적 수단이다.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상품을 이동시키는 가장 편리한 도구다.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컨테이너'전은 컨테이너를 물류 수단으로서만이 아닌, 문화 전파와 교류의 '마법상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이색 전시다. 참여 작가는 김주영 박소영 윤진미 정재철 조덕현 조숙진 최정화 등 우리 미술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40∼50대 중반 작가들이다. 이들은 상품을 담는 컨테이너 용기로서의 형태적 측면, 컨테이너에 담겨진 내용물(콘텐츠), 컨테이너가 지닌 기능성 등 세가지 측면에서 접근한 다양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그 이면에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 제3세계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들이 모색되고 있다. 참여 작가중 김주영 윤진미 조숙진은 각각 파리와 밴쿠버 뉴욕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이방인'으로서 체험한 삶의 힘든 여정을 독특한 예술언어로 보여준다. 국제적인 보편언어이면서 지역적 특징을 반영하는 이른바 '글로컬리즘(Globalism+Localism)'을 모색하고 있다. 김주영의 '바라나시에서 온 물고기'는 1988년의 인도 방문 기억을 떠올려 제작한 설치물이다. 화장터이자 빨래터이며 종교의식 현장이었던 바라나시 강의 '부적 촛불제'를 직접 체험하면서 광목띠로 염하고 사체 주변에 헌화하면서 명상에 들어가는 제의식을 기억의 컨테이너에 담아온 것이다. 안규철은 설치물 '움직이는 산'을 출품했다. 세상에서 이동을 거부하는 것이라고는 산이나 강과 같은 자연밖에 없다. 안씨는 그러나 이윤을 위해선 농장이 옮겨가고 공장도 이동하는 시대에 산마저도 이동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시각을 설치작품으로 나타냈다. 윤진미의 'Welcome Stranger Welcome Home'은 유명 관광지인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퍼레이드 장면을 3개의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비디오 매체야말로 이 시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 컨테이너라고 주장한다. 정재철은 여행을 통해 모았던 오브제들을 수십 개의 나무박스에 담아 나열한 '무제'를 출품했다. 여행 자체가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의도로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삶의 편린을 오브제 수집과 분류 나열을 통해 담아냈다. 25일까지. (02)760-4602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