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의 글에는 항상 삶의 깊이와 시대적 통찰력이 배어있다. 이미 그는 '단절의 시대'(1969),'새로운 현실'(1989),'자본주의 이후의 사회'(1993) 등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과시한 바 있다. 드러커의 저서는 흔히 미래서로 분류되지만 다른 미래서와 구분되는 면이 있다. 막연한 예측이나 예언이 아니라 항상 과거와 현재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나 신경제를 이야기 할 때 산업혁명이나 철도혁명기를 대비시키고,기업과 노동의 미래를 논할 때도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드러커가 말하는 미래는 그가 살아온 93년의 경험과 지식,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드러커의 신작 '넥스트 소사이어티(Next Society)'(이재규 옮김,한국경제신문사,1만3천원) 역시 드러커의 삶과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저술이다. 주제는 미래사회 미래경제,그리고 미래경영에 대한 예측이다. 이 책은 단행본 형태가 아니라 1996년 이후 드러커가 이코노미스트지나 포린 어페어스지 등에 기고했던 글을 묶은 것이다. 기고 시점에 비해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통계 수치를 비롯해 수정이 필요할 법한데도 당시 기고한 원문을 그대로 실었다. 독자들로 하여금 4∼5년전 드러커가 바라본 미래가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비교·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재미까지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다. 드러커가 내다보는 다음 세상(Next Society)은 한마디로 지식이 강조되는 사회다. 이는 그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등에서도 줄기차게 강조했던 테마다. 지식사회란 지식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고 지식근로자가 지배적 집단이 되는 사회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근로자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고용주들과의 관계에서도 '상사와 종업원'이 아니라 '동등한 동업자' 관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지식사회는 신분제 사회나 산업사회보다 훨씬 상승 이동이 쉬워지는 사회다. 지식은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처음에는 누구나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반면 정규교육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식사회로의 이전이라는 대전제하에서 드러커는 미래의 기업은 지식근로자를 더 이상 피고용자로 대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경영자들은 지식근로자에게 보너스와 스톡옵션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계속 피고용자로 남게 하려는 노력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주식 시장이 호황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근로자가 조직에 매력을 느끼고 계속 머무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적 충족뿐 아니라 조직이 그들의 가치관을 만족시켜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사회적 인정과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까지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보수가 많더라도 지식근로자를 피고용자 신분으로 묶어두려고 하는 조직은 발전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드러커는 근로자에게도 넌지시 충고를 던지고 있다. 지식사회는 성공뿐 아니라 실패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상처를 입기 쉽다. 설령 성공한 지식근로자라도 자신이 이룬 것이 일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드러커는 젊었을 때 비경쟁적인 속성을 지닌 공동체 참여나 외부 관심사를 개발해 둘 것을 충고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인간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또한 자아 성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넥스트 소사이어티'에는 이밖에도 정보사회,기업과 최고경영자의 미래,신경제,세계 경제의 변화에 대한 드러커의 시각이 담겨 있다. 지면에서 이를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젊은 학생들부터 나이 든 세대에 이르기까지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이윤호·LG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