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필자에게는 칼국수가 바로 그런 음식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혼분식 장려정책 때문이었는지 일요일 점심은 보통 국수였다. 여느 때는 멸치국물에 말아주는 기계국수로 만족해야 했지만 모처럼 부친이 집에 계시거나 친척어른이라도 오시는 날이면 제대로 된 칼국수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하절기에는 닭칼국수,동절기에는 사골칼국수였는데 닭칼국수쪽이 조금 더 품이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선 시장에 가서 닭을 산 뒤 솥이나 찜통에 닭 삶을 물을 올리고 전날 밤 준비해놓은 밀가루반죽을 상위에 놓고 홍두깨로 밀기 시작한다. 밀가루를 상과 홍두깨에 문질러가며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서 밀면 두툼한 반죽덩어리가 어느새 얇고 널찍하게 변한다. 병풍 접듯이 차곡차곡 접어서 칼로 썰면 국수가 되는데 밀가루를 뿌려서 채반에 골고루 펼쳐놓는다. 닭이 푹 삶겨지면 고기만 뜯어내어 고춧가루 파 마늘 후추로 빨갛게 무친다. 애들 칼국수에 두어점씩 꾸미로 올리고 나머지는 어른들의 술안주다. 어린 마음에 그게 부러워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렸지만 정작 어른이 된 지금은 자식들이 최우선이라 제대로 얻어먹지도 못한다. 낀세대의 운명이리라.맛있는 칼국수 전문점을 몇 집 소개한다. 명동교자(명동 유투존 뒷길.02-776-5348)=시중에 닭칼국수 잘하는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원인은 닭에 있다. 늙은 토종닭을 써야 국물 맛이 깊어지나 칼국수 가격을 7,8천원이상 받지 않는한 수지 맞추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량 사육되는 이른바 브로일러 닭을 쓸 수밖에 없다. 명동교자는 이런 와중에서도 괜찮은 칼국수집이다. 명동교자는 과거 명동칼국수라는 이름으로 교자만두가 들어간 칼국수와 양념을 아끼지 않은 겉절이김치,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공기밥으로 대박을 터트렸던 노포(老鋪)이다. 규모의 경제 때문인지 닭을 베이스로 한 칼국수 맛이 괜찮은 편이다. 한강(삼선동 로터리 부근.02-747-4004)=혜화동 로터리와 삼선동 로터리 그리고 성북동 경신고등학교 부근을 꼭지점으로 연결하는 지역은 가히 칼국수 삼각지대라 부를만 하다. 그 넓지 않은 지역에서 영업중인 칼국수 전문점이 10개 가까이 된다. 경쟁률이 높다보니 과거의 어느 대통령이 자주 다녔다는 거만한 집부터 주민들 대상의 겸손한 동네 칼국수집에 이르기까지 맛의 격차가 거의 없다. 이중 한강은 사골국물에 하늘하늘한 국수가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면발에 여운이 있고 정성스럽게 담근 포기김치와 깍두기가 좋다. 싼가격과 주인의 친절도 매력적이다. 칼국수 값은 보통 3천원,야채전 5천원. 서울칼국수(남양주시 화도읍.031-594-1399)=남양주사람들이 자랑하는 칼국수집.마석에서 수동으로 빠지는 길 초입,시장 한복판에 있어서 외지사람은 찾기 힘들지만 시골장터를 구경하며 다니다가 아무에게나 물어봐도 될 만큼 유명하다. 첫인상은 전형적인 시골장터에 있는 식당 모습으로 수수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여름철에만 콩국수가 추가될 뿐 칼국수 한가지뿐인 메뉴가 자신감을 대변한다. 사골로 끓여낸 국물은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잡맛이 없어서 좋다.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면발도 힘이 느껴진다. 잊고 살았던 옛날 손칼국수의 맛이다. 칼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름휴가 갈 때 조금 돌아가더라도 한번쯤 들려봄직하다. < 최진섭.맛칼럼니스트.MBC PD (choijs@m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