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경림(67)씨가 새 시집 「뿔」(창작과비평사刊)을 내놓았다. 1998년 발표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이후 4년만이다. 새 시집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노시인의 초월의지가 곳곳에 드러난다. "이제 그만둘까보다, 낯선 곳 헤매는 오랜 방황도"(누항요)라거나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들 모두/땅거미 속에 묻으면서"(집으로 가는 길)라거나 "이쯤에서길을 잃어야겠다"(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고 고백하는 시편에서 '떠도는 삶'의운명을 지닌 시인의 회한과 슬픔이 가득 밀려온다. 시인은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저 세상에 가서도다시 이 세상에/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른지도 모른다"(떠도는 자의노래)고 번민하지만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도 반짝이는데"(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라며지나온 삶을 긍정하고 다가올 죽음까지도 한껏 껴안는다.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뿔)거나 "죽어서 헐값의 가죽밖에남긴 것이 없다. 가죽보다 더 값진 교훈을 남겼다는 거짓과 함께"(개)라며 죽어가는민중의식을 일깨우는 시들도 실려 있다. 시인은 책의 말미에 "한때는 고통스럽던 시 쓰는 일이 이제는 즐거워졌다"고 적어놓았다. 50년 가까운 시쓰기를 통해 문학과 삶이 진정한 합일의 지점에 이른 것일까? 98쪽. 5천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