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가로 세로로 그은 'ㅡ'자만 가득한 화면.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중견작가 남천(南天) 송수남씨(64·홍익대 교수)의 작품은 '무엇을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다. 종이 위에 화면을 지배하는 먹과 살며시 물의 흔적만이 보이는 수묵화다. 농담(濃淡)의 차이만 있을 뿐 색이 없다. 책으로 가득찬 서가 같기도 하고 석기시대 토기에 나타나는 빗살무늬 문양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형태가 없다. 너무 단조롭다 싶을 정도로 흑과 백의 대비만이 존재한다. 자유분방하게 붓질을 펼쳐놓았던 지난 97년 토탈미술관에서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송씨는 1980년대부터 후배 제자들과 함께 '수묵운동'을 주도한 작가다. 그동안 저서만도 11권이나 펴내면서 수묵화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지만 오늘날 수묵화는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더욱 위축돼 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송씨의 근작은 '수묵의 근원'으로 회귀한 것 같다. 수묵 속에 내재된 자연정신을 보여주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몇년 전부터 한일(ㅡ)자만 쭉쭉 그었습니다. 곧게 살자는 얘기죠."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단순한 선긋기 작업은 한국적 미감을 찾으려는 노력이지만 일반인들이 교감하기에는 너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이란 느낌이 든다. 25일까지.(02)732-3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