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물고기가 왜 여기서 잡힐까?/노랑 바탕에 잿빛 줄무늬,/양쪽 지느러밀 활짝 펴도 작은 나비만한 물고기가 낚시를 물고 올라온다//한 生을 바꿔놓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라도/남해 먼 섬이나 그보다 더 아득한/열대해 쯤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물밑 사정/땅 위에서는 짐작이 안되지만/일렁이는 수면과 속의 해류/사이로 펼쳐지는 물고기들 고달픈 접영,버터플라이로 더듬어 온/몇 만 리 유목이 흐르는지'(버터플라이 중) 중견시인 김명인의 시는 섬세하면서도 강인하다. 섬세함과 강인함은 양립하기 힘든 항목이지만 김씨는 섬세함을 끈질기게 고집함으로써 한 세상을 돌파했다. 그는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산문처럼 호흡이 긴 그의 문장은 사물의 안팎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표현 미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김씨의 시편은 절차탁마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월송정 아래 갈기 휘날리며 달려오는/달려오다 엎어지는 겨울 파도를 보면/어째서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부끄러움이며/떠밀려 부서져도 필생의 그 길인지,/어떤 파도는 왜 핏빛 노을 아래 흥건한 거품인지//희망과 의욕을 뭉쳐놓지만 되는 일이 없는/억장 노여움이 저 파도의 막무가내일까?/한 치 앞가림도 긁어내지 못하면서/바위에 몸 부딪혀 스스로를 망가트리며/파도는 그래서 여한없이 홀가분해지는 걸까//한꺼번에 꺾어버리는 일수(日收)처럼 운명처럼'(파도 중) 김 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바다의 아코디온'(문학과 지성사)은 전작과 달리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시집이다. 지천명을 훌쩍 넘겨버린 시인은 '이 불안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느새 몸이 아득한 절벽의 둘레에 섰다'고 말한다. '바닥이 안 보이는 끝없는 나락' 앞에서 '아는 것으로 쓸쓸해지는 것이 순명의 자리'라고 읊조리는가 하면 '벗지 못한 약속 때문에 혼자 불이문(不二門) 근처를 헤맨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매운 실패가 생살을 저며내는 동안에 파도는/부서진 제 조각들 시리게 끌어안는다./다 털린 뒤에도 다시 시작하려고/시렁에 얹힌 먼지를 털어내고/…이제는 갈기 세워 몰고 갈 바람도 세간 속으로 들이닥친 기력조차 쇠잔해진//한때의 질풍노도가' 김씨는 자연에 대한 관찰을 삶과 죽음에 대한 직관으로 승화시킨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씨는 "김명인 시의 주요 모티프는 바다"라며 "최근에는 어둡고 황량한 이미지에서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생명의 바다로 옮아가고 있다"고 평했다. 고려대 교수인 김씨는 시집 '머나먼 스와니''바닷가의 장례' 등을 냈고 소월시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윤승아 기자 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