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내 영혼의 바닥에서/흔들리는 화살이여//세상 모든 것 다 알 수 없지만/사랑이란,심술궂고 어여쁜 궁수가/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동굴./이토록 침묵하는 그대는 얼마나 깊고 넓은 동굴인가요'('그대의 침묵' 부분) 탄생 2백주년을 맞은 세계적 문호 빅토르 위고.프랑스의 국민 시인이자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인 그의 시선집 '떨림,사랑'(고두현·이사르티에 번역,현대문학북스)이 출간됐다. 그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작품 중에서 사랑에 관한 시만 골라 번역한 것.원문도 함께 실렸다. 위고는 '레 미제라블'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는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인들이 불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시인 1위가 바로 위고다. 그의 시는 낭만적이고 장중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랑 시편이 특히 뛰어나다. 그가 연인 쥘리에트 드루에와 50년 동안 일궈낸 러브스토리는 애절한데 그 사연이 작품 곳곳에 흥건히 배어 있다. '우리 서로 사랑을 나누던 그 새벽빛도/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느니/푸른 창공에서 웃음짓듯 오월은/우리 영혼 속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는구나//저 화사한 웃음소리,/세상 모든 것이 차례차례 빛나는구나./밤에는 별들이 반짝거리며 소리를 내고/낮에는 벌들이 붕붕거리는 모습을 보아라'('겨울이 끝난 뒤') 위고의 연인은 자기 집 한 귀퉁이를 집필실로 개조하고 그곳에서 글쓰는 시인의 모습을 즐겨 바라보곤 했다. '당신은 나의 사자이고,나는 당신의 흰 비둘기입니다. /난 듣지요. 당신의 평화롭고 부드러운 종이 소리를./가끔은 떨어지는 당신의 펜을 줍기도 하지요. /(…)/내가 당신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당신도 가끔은 나를 좀 쳐다보아 주셔야 해요'('나를 좀 보아요') 때로는 '난 행복해요. 당신이 읽고 있는 그 페이지 위에 당신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이렇게 조금이라도 곁에서 볼 수 있어서…'라고 낙서하곤 했다.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위고가 일에만 몰두한다고 토라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 위고는 '사랑은 화덕의 불씨!/사랑은 별들의 빛'이니 '진정 변하지 않는 완전한 사랑을 믿어라'고 다독였다. 이번 시집은 위대한 문호를 기리기 위해 한국과 프랑스의 시인이 공동으로 번역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시공을 뛰어넘는 세 시인의 교감이 섬세하고도 조화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 공동 번역자인 장 크리스토프 이사르티에(36)는 2년간 한국에 체류했으며 그의 시집 '사랑의 미로'에는 한국 관련 작품이 5편이나 담겨 있다. 그는 4월중 프랑스문화원 주최 '빅토르 위고 주간'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다.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