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번역가 겸 작가로 일반에 알려진 안정효씨가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는 영화다. 영화로도 제작됐던 안씨의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알 수 있듯 그 자신 스스로 '할리우드 키드'라고 생각할 정도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가 좋아 3류 극장을 배회하고 친구들과 영화 얘기를 하던 소년은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그래서 내놓은 책이 「전설의 시대」(들녘刊. 부제: 할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과 역사). 부제에서 알 수 있듯 20세기에 제작된 약 2만편의 영화를 정리해보겠다는 야심찬 의도를 담고 있다. 이번 책에서 2만편 모두를 다룬 것은 아니고 현재 61세인 저자가 65세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20권을 내면서 20세기의 영화를 특정 주제별로 정리해보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문학은 영화의 환상을 만들어주는 원자재'이고 '문학과 영화는 밀가루와 빵의 관계, 쌀과 밥의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은 영화와 문학을 넘나든다. 아니, 넘나드는 정도가 아니고 영화 이야기를 문학 이야기로 시작하고, 문학 이야기를 하다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역사나 신화가 등장한다. 또 영화배우나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심지어 번역상의 기술적인 면까지도 언급되는 등 한 마디로 문학과 영화, 역사를 주재료로 갖가지 양념을 넣은 '비빔밥 책'이다. 시대순이나 장르별 편집은 애당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고 전설이나 신화와 관계된 영화들을 특별한 공식적 순서없이 엮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굳이 처음부터 정독하듯 읽을 필요가 없고, 흥미가 가는 부분만 아무데나 골라 읽어도 좋게 돼 있다. 저자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정보가 풍부한 문장 덕택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336쪽. 1만2천원. (서울=연합뉴스) 김형근 기자 happy@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