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있는집에서 펴낸 「빵의 역사」(하인리히에두아르트 야콥 지음. 곽명단ㆍ임지원 옮김)는 사연이 있는 책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처음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근 60년 전인 1944년이었다. 출간 당시 각계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한동안 잊혀졌다가 1970년 뉴잉글랜드의한 영세 출판사가 발굴해 복간한 덕분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됐으며 최근 피터 버포드오브 리옹&버포드 출판사에서 재출간한 이후 세계 각국에 번역, 소개되고 있다. 저자인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1889-1967)은 베를린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문학, 철학, 음악, 역사를 공부했으며 오스트리아 빈 등 유럽의 주요일간지에서 수석 기자로 활동했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돼 집단수용소에 수감됐다가 아내와 미국인 삼촌 덕분에 미국시민권을 얻어 1939년 석방됐다. 저서로 「요한 슈트라우스」「모차르트」「커피」 등 40여권이 있으며 「빵의역사」는 그중에서도 저자 자신 필생의 역작으로 꼽는 저서이다. "빵의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를 통해 야콥은 세계사를 개괄했다. 요컨대 세계의풍속, 종교, 민간신앙, 역병 등을 빵을 중심으로 쓴 것이다. 저자는 고대 이집트에서 1943년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꿰뚫고 있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의 서평처럼 이 책은 '인류문명사에서 빵의 결정적 성격을 기술한 역사책'이다. 시간적으로는 기원전 4천년부터 현대까지를 기술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이집트에서 중국까지를 아우른다. 책을 읽다보면 무엇보다 그 방대한 자료의 동원에 놀라게 된다. 이 책에는 신화,화학, 농업, 종교, 경제, 정치, 법 등 인류 문명의 핵심 분야들이 망라돼 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이렇게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많은 자료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야콥이 이 작업을 해낸 것은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던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오늘날에도 '식량의 무기화'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지만 야콥은 예수가자신을 빵이라고 지칭했던 데서 이미 이같은 가능성을 간파했다. 예수는 농경기술에서 차용해온 무수한 비유에 윤리의 옷을 입혔으며 마침내 죽음을 앞두고는 "먹어라. 내가 곧 빵이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원래의 빵의 신 데메테르를 내몰고 그 자리를 차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병사들의 위장이다'라는 격언을 남긴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나 실전에서 그는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너무 빨리 진격한 나머지 빵을 실은 마차들이 미처 기병대를 따라오지 못했던것이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곡창지대에 도달하면 빈 곡물마차를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오였다. 러시아 군대는 퇴각하면서 여문 곡식이라면 마지막 한톨까지도 모조리 가져가버렸던 것이다. 빵 없이 50일이 지나자 군사들은 거의 미쳐갔다. 굶주린 병사들은 얼어죽었으며빵 한 입을 자치하기 위해 살인까지 벌였다. 빵을 위해 나폴레옹이 실제 이룩한 업적이라면 약 200만명의 프랑스인과 동맹국및 적국 국민 약 600만명을 죽임으로써 빵 먹는 입을 크게 줄였으며 엄청나게 죽어간 이들의 시신이 유럽의 들판을 비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밀 생산지가 북부에 집중돼 있던 때문이었으며 히틀러는 인공 기근을 이용해 인종말살을 꾀한 전무후무한 전략가였다. 야콥이 이같은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누구보다도 빵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1938년 4월, 나치가 빈을 급습해 오스트리아 지식인 150명을 체포했을 때 수석 기자였던 야콥 역시 체포돼 다카우와 부켄발트에 있는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은 야콥에게 이 책을 기필코 완성하리라는 의지를 불러일으켰으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야콥은 이렇게 쓰고 있다. "부켄발트의 강제수용소에서 우리는 진짜 빵을 맛볼 수 없었다. 빵이라고 불리는 물건은 감잣가루, 콩, 톱밥의 혼합물이었다. 속은 납빛이었고 껍질은 쇳빛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전에 먹었던 진짜 빵을 추억하며 그것을 빵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 빵이나마 사랑했고 그것이 배급되기를 노심초사 기다리곤 했다... 빵은 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한편 세속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람과 빵은 나란히 6천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신의 두 피조물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불렀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보다 더 간결하게 행복과 만족과 감사를 표현한 말은 없을 것이다" 640쪽. 2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