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과 감동의 두가지 미덕을 동시에 갖춘 해외 소설 3편이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오싱젠(62)의 신작 '나 혼자만의 성경'(박하정 옮김,전2권,현대문학북스)과 프랑스 작가 미셸 깽(53)의 '처절한 정원'(이인숙 옮김,문학세계사),크리스티앙 오스테르(53)의 '로라,내 아름다운 파출부'(임왕준 옮김,현대문학).이들 작품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화제작인데다 작가들도 대가급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나 혼자만의 성경'은 중국 문화혁명의 희생자이자 외부 관찰자로서의 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걸작.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시점에서 출발해 유태계 독일 여성을 만나 중국에 거주하던 시절,문화혁명의 소용돌이와 탈출,서양으로 떠도는 과정이 이어진다. 여기에 87년 중국을 떠나 정치적 난민 자격으로 파리에 정착,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그의 인생 여정이 겹쳐진다. 주인공은 아주 직설적으로 자신이 정치권력에 강간당했다고 말하며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역설한다. 그리고 '하나의 눈빛이자 일종의 말투'인 자유는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실은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일깨운다. 인간의 나약한 본성이 어떻게 왜곡되고 억압과 공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처절한 정원'은 전쟁과 사랑의 대서사시를 한 편의 드라마로 응축시킨 소설.9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소설의 기둥은 이른바 '모리스 파퐁 재판'.파퐁은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다는 경력으로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나치 부역자였다. 어릿광대 복장으로 법정에 입장하려다 저지당한 뒤 분장을 지우고 재판을 지켜보게 된 '나'는 죽은 아버지와 삼촌,숙모를 회상한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어릿광대 복장으로 사람들을 자주 웃겼다. 그 속의 숨은 일화.아버지와 삼촌이 독일군에 잡혔을 때 독일군 초병이 익살과 묘기로 공포에 떨던 그들을 안심시키고 삶의 희망을 주었다. 숙모에게도 슬프고 장엄한 비밀이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이 열차역 변압기 폭파 임무를 끝낸 뒤 붙잡혔는데 현장에서 한 철도공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생존 가능성이 없자 뜻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한 그 철도공의 아내는 남편을 폭파범으로 신고하고 아버지와 삼촌을 풀려나게 했다. 그녀는 나중에 '나'의 숙모가 됐다. '로라,내 아름다운 파출부'는 소멸과 생성의 무늬결을 아름답게 비추는 소설.사랑했던 여자가 버리고 간 아파트에 먼지만 쌓인다. 그 외로운 공간으로 매력적인 파출부 로라가 걸어들어온다. 고용 계약으로 맺어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하고 동거와 여행,고뇌의 순간들을 거치면서 소설은 실존의 의미를 해변가의 절망으로 그려보인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모습을 반영하는 그녀는 벽이 아니라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갈 인간의 운명을 비추는' 거울로 형상화된다. 현대문학의 해외현대소설선 시리즈 세번째 작품.앞서 나온 조엘 에글로프의 '장의사 강그리옹''해를 본 사람들'과 이번주 서점에 깔리는 루이프네 데 포레의 '말꾼'도 놓치기 아깝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