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바로크 작곡가 마랭 마레(1656-1728)는당대의 뛰어난 비올라 다 감바(첼로의 전신격인 악기) 연주자였다. 그가 남긴 5권의 비올 작품집은 오른손의 활긋기와 왼손의 운지법, 음의 지속과 공명, 원치 않는 공명의 회피 등 비올라 다 감바를 포함한 비올족(族) 악기로 할 수 있는 모든 기술적 측면이 총망라된 화려한 프랑스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마레는 10여년 전 개봉됐던 프랑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널리 알려졌다. 마레와 그의 스승 생트 콜롱브의 일생을 다룬 이 영화는 고음악 연주 및 연구가로 유명한 호르디 사발이 음악감독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하튼 영화의 영향 덕분인지 최근 각종 고음악 레이블에서는 마레의 비올 작품을 녹음한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예 자신의 레이블(알리아 복스)을 만든 사발을 위시해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크리스토프 코인, 빌란트 쿠이켄, 미에네케 반 데르 베르덴 등의 연주자들이 녹음한 음반이 음악팬들 사이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최근 EMI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인 버진 클래식스에서 출시된 마레의 「비올 작품집 Vol.2」는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프랑스 출신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제롬 앙타이와 그의 동생인 클라브생 연주자 피에르 앙타이, 베이스 비올 연주자 알릭스 베르지에 등이 녹음한 음반이다. 이 음반에 'Vol.2'라는 제목이 붙은 이유는 1년여 전 같은 연주자들이 같은 레이블을 통해 마레의 비올 작품집 음반을 출시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Vol.2'에는 마레가 남긴 5권의 비올 작품집 가운데 2권과 3권, 4권 중에서 이전의 음반에 수록되지 않았던 비올을 위한 춤곡 모음곡 양식의 작품 4곡이 수록됐다. 마레의 비올 작품은 유명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마찬가지로 프렐류드, 알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뉘에트, 지그 등 바로크 시대 춤곡 모음곡 양식으로돼 있는데 두 대 또는 세 대의 비올에 통주저음이 따라붙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제롬과 피에르 앙타이는 또 한 명의 형제인 바로크 플루티스트 마르크와 함께 '앙타이 트리오'의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고음악 연주자들이다. 근래에는 특히 마레의 작품들에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앙타이 형제와 베르지에의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살롱풍의 앙상블은 마레의 비올 작품 특유의 양식적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륄리의 영향이 강하게 엿보이는 라단조 프렐류드에서의 흐느끼는 듯한 베이스 비올의 세밀한 움직임과 클라브생의 연속적인 반음계적 하강 위에 다성적인 선율이 얹혀지는 사라방드의 장식적 아름다움은 지극히 프랑스적이다. 앙타이 형제와 베르지에는 마레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트릴과 모르덴트 등의 다채로운 꾸밈음이 주는 장식적 효과를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왼손의 비브라토는 최대한 억제함으로써 단아한 살롱풍 무곡의 효과를 십분 살려낸다. 마레 음악 특유의 귀족적 우아함과 양식적 세련미가 조화를 이룬 명반으로 꼽을 만하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