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맞아 평양의학전문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로 돌아온 박인환은 부친과 이모로부터 차입한 돈 5만원으로 뒷날 월북한 시인 오장환(吳章煥)이 낙원동에서 경영하던 스무평 남짓한 서점을 인수한다. 얼마 뒤 초현실주의 화가 박일영(朴一英)의 도움으로 간판을 새로 달고 다시 문을 여는데,이것이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모태 역할을 했던 헌 책방 마리서사(茉莉書肆)이다. 서점 이름은 일본 현대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함 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프랑스의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을 땄다는 설로 나뉘어져 있다. 어느 게 정확한 것인지 확인은 불가능하다. "마리서사"의 서가에 진열된 책들 대부분은 박인환이 소장하고 있던 책들인데,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을 위한 전문 서점이었다. 앙드레 브르통,폴 엘뤼아르,마리 로랑생,장 콕토와 같은 외국 현대시인들의 시집,"오르페온""판테온""신영토""황지"와 같은 일본의 유명한 시잡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리서사"에는 하루도 시인이나 소설가,화가들이 모여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김광균(金光均) 이봉구 김기림(金起林) 오장환 장만영(張萬榮) 정지용(鄭芝溶) 김광주 등 시인 소설가들,"신시론(新詩論)"동인 김수영(金洙暎) 양병식(梁秉植) 김병욱(金秉旭) 김경린(金璟麟)등,조향 이봉래 등의 "후반기" 동인들,화가 최재덕 길영주 등이 "마리서사"의 단골손님이었다. 특히 김수영은 박인환과 동년배로 동인활동을 함께 하며 "새로운 도시(都市)와 시민(市民)들의 합창(合唱)"이라는 앤솔로지를 내기도 하는 등 두터운 교분을 가졌다. 그러나 나중에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 김수영은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박인환의 취향을 경박하며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몰아부치며 경멸하고,박인환은 또 그대로 김수영이 세속적인 눈치만 보는 속물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