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한 현실참여 지식인이자 세계적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기획한 「세계의 비참」(동문선)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비참한 현실에 놓인 인간군상을 사회학적 눈으로 투시.조명한 연구서로 지난달 암으로 세상을 떠난 부르디외가 파트릭 샹파뉴, 가브리엘 발라즈 등 22명의 사회학자들과 함께 1990년부터 3년간 공동연구한 결과물이다. 집도 절도 없는 걸인 부부, 소명의식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빈민가의 고교 교사들, 실업 여성, 나이트클럽 문지기, 이민자, 농촌 노인들, 도시 노동자... 소외.격리된 사람들의 만성적인 삶의 고통의 목소리가 1천500여쪽 분량에 가감없이 기록되어 있다. 부르디외 등은 사회적 하위계층을 샅샅이 훑으며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과 이유를 그들의 삶과 결부시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통탄해도 비웃어도 혐오해서도 안된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독자들이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책에는 51개의 인터뷰 사례마다 임상소견서같은 분석적인 서문이 덧붙어 있다. 각 서문은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 그들의 환경과 삶의 궤적, 교육, 직업 경력 등을 상기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부르디외는 사회 위기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분명해서 굳이 해석을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의 사회적 표징들이 나타나야만 그제야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의학이 환자가 의식하지 못하거나 깜빡 잊고 미처 말하지 않은 증상들까지 알아채고 치료해야 하듯이 사회과학도 사회 위기의 진짜 원인들을 알고 이해해야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물론 부르디외는 사회과학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한다. "삶을 고통스럽고, 심지어 살 수 없을 정도로까지 만드는 구조들을 제대로 인식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구조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순들을 밝혀낸다고 해서 그것이곧 모순들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고통 당하는 자들로 하여금 고통의 책임을 사회적 원인에서 찾을 수있게 함으로써 그들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게 해주고, 또한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형태를 포함하여 온갖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행들의 출처, 즉 집단적으로 은폐돼온 사회적 출처를 드러내는" 이 책의 작업이 결코 무가치할 수는 없다. 정치가와 언론인이 애써 외면하는 소외계층의 비참한 현실을 적시하는 이 책은 과연 어떠한 정책이 사회적으로 요구받고 있는지를 곰곰 생각하게 한다. 비가 새는 지붕은 눈감아버리거나 하늘을 원망한다 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김주경(총신대 강사)옮김. 전3권. 1,525쪽. 각권 2만6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