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한국인들은 대단히 불행했다. 그러나 한국문학의 20세기는 역설적으로 행복한 세기였다. 식민지 체험과 전쟁,분단을 겪은 한국인의 불행을 예술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한국문학은 풍성해졌다. 시대의 불행은 문학이 우량아로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지난 세기의 한국문학 생산자들은 우리가 헤쳐 나온 어두운 시대의 위대한 증언자들이다. 그들은 작가라는 불행한 운명에 포박되어 온몸으로 온몸을 밀며 한국문학을 일궈냈다. 그들은 착종과 파행으로 얼룩지고 가위눌린 삶에서 터져나오는 혼미한 언어들을 토해내었다. 그들의 삶의 정면이 아니라 응달에 묻혀 있는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리즈 ''한국문단 비사''를 주 1회 싣는다. .............................................................. 금홍아,금홍아! 1933년 늦여름 어둑어둑해질 무렵.백단화(白短靴)에 평생 빗질 한 번 해본 적 없는 듯한 봉두 난발,짙은 갈색 나비 넥타이,구레나룻에 얼굴빛이 양인(洋人)처럼 창백한 사나이,중산모를 쓴 키가 여느 사람의 반밖에 되지 않는 꼽추,키가 훌쩍 큰 또 다른 사나이,이렇게 셋이서 종로를 걸어간다. "어디 곡마단 패가 들어왔나 본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기묘한 일행을 보고 한 마디씩 던진다. 백구두의 사나이가 갖고 있던 스틱을 들어 공연히 휘휘 돌려대다가 느닷없이 "카카카…!"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스스로 생각해도 일행의 몰골이 우스꽝스러운 까닭이다. 그들이 백천 온천에 갔을 때도 경성에서 곡마단 패가 왔다고 애들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세 사람 가운데 백단화에 구레나룻의 사나이가 바로 이상(李箱·1910∼1937)이고,중산모를 쓴 꼽추는 화가 구본웅이다. 의탁하고 있던 백부의 가세마저 기울자 이상은 학교에서 현미빵을 파는 고학을 하며 어렵게 보성고보를 졸업한다. 그가 식민지 건축 기술자 양성을 위해 세워진 경성고등공업학교(서울공대의 전신)에 들어간 것은 백부의 소망 때문이다. "해경(이상의 본명)아,앞으로 너는 건축과를 가야 한다. 나도 병들고 네 아비도 늙고 가난하지 않느냐.적선동(해경의 친가)은 식량이 떨어질 때도 많은 모양이더라.세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기술자는 배는 곯지 않는단다. 그러니 가난한 환쟁이는 안 돼" 백부는 그를 설득한다. 이상이 ''오감도''''삼차각 설계도''''건축 무한 육면각체''등 건축과 깊은 관련을 지닌 표제어를 자주 쓰고 아라비아 숫자와 기하학 기호 등을 시어로 차용하고 수식(數式)보다 난해한 시들을 쓰게 된 것은 바로 이 고등공업 시절의 영향이다. 1933년 이상은 백부의 양자로 들어간 지 23년 만에 가족과 합치나 불과 보름을 견디지 못하고 나와버린다. 이상은 폐결핵 요양 차 구본웅과 함께 백천온천으로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술집 여급 금홍을 만난다. "몇 살인구?" "스물 한 살이에요" "그럼 내 나이는 몇 살이나 돼 뵈지?" "글세,마흔? 서른 아홉?" 이 때 금홍은 겨우 스물한 살이고,금홍의 눈에 마흔이 넘은 것으로 비치던 이상은 알고 보면 스물세 살이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 백부의 유산으로 청진동 조선광무소 건물 1층을 전세내어 ''제비''다방을 개업한다. 금홍을 불러들여 마담으로 앉히고,아울러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한다. 이상은 "나는 추호의 틀림없는 만 25세 11개월의 홍안 미소년(紅顔美少年)이다. 그렇건만 나는 노옹(老翁)이다"라고 쓴다. 이상은 찰나적인 행복감에 젖었다. "우리 내외는 참 사랑했다. 금홍이와 나는 서로 지나간 일은 묻지 않기로 하였다. 과거래야 내 과거가 무엇 있을 까닭이 없고 말하자면 내가 금홍이의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한 약속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제비''는 당대의 일급 문인들인 이태준·박태원·김기림·정인택·윤태영·조용만 등이 단골이었다. 다방의 경영은 여의치 않고,금홍은 외간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곤 한다. 이상은 금홍이의 ''오락''을 돕기 위해 가끔 P군의 집에 가 잤다. P군은 소설가 박태원이다. 금홍의 문란한 남자 관계를 방임·방조하던 이상은 때로 금홍의 난폭한 손찌검에 몸을 내맡긴 채 자학을 꾀한다. "하루 나는 제목 없이 금홍이에게 몹시 얻어맞았다. 나는 아파서 울고 사흘을 돌아오지 못했다. 너무도 금홍이가 무서웠다" 그렇게 집을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금홍이는 집에 없었다. 때 묻은 버선을 윗목에 팽개쳐놓고 나가버린 것이다. ''제비''다방은 두 해 만인 1935년 9월 문을 닫았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이런 때는 연애까지 유쾌하오''로 시작되는 소설 ''날개''는 바로 금홍과의 동거 체험에서 건져낸 작품이다. ..............................................................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문학평론이 당선됐다. 지금까지 10권의 시집과 6권의 문학평론집을 펴냈다. 2000년에는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전5권)을 엮어냈다. 청하출판사의 편집·발행인으로 일했으며,현재는 경기도 안성의 수졸재에서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