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제2의 얼굴.손의 생김새와 동작을 관찰하면 그 사람이 얼굴 뒤로 감춘 것들의 일부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나름의 인격을 가진 독자적인 생명체처럼 손은 움직이고,떨고,감정을 발산한다" 한강씨(32)의 신작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은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거대한 손의 형태로 만들어진 연극무대,그 속으로 텅 빈 손가락 안의 세트가 보이고,우렁우렁 들려오는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손''을 매개로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뚱뚱한 몸매에 손만 예뻐보이는 여대생 L과 지나칠 정도로 차가운 손을 가진 인테리어 디자이너 E.두 여자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색하는 조각가. 이들은 모두 미완의 생에 한 쪽 발을 담그고 각자의 아픔을 애써 감추려 한다. 액자소설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조각가 장운형.그의 작업은 인체의 부문이나 전체를 석고로 뜨는 라이프캐스팅이란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어느날 전시장에서 L을 만나 그녀의 손을 석고로 뜬다. 비만 콤플렉스로 소외감을 느끼던 그녀는 장운형의 부드러운 손길에 차츰 마음을 연다. 그러나 의붓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상처 때문에 폭식하게 된 그녀의 비극은 살을 빼려는 집착으로 이어진다. 음식을 먹은 뒤 일부러 토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변해가는 그녀와 잠시 멀어지고 장운형은 E를 만나 그녀의 석고도 뜬다. E 또한 어린 시절 육손이로 놀림받았던 아픔이 있다. 지금은 수술을 해서 정상이지만 그녀의 몸은 손 때문에 극단적으로 움츠러든다. 장운형은 그녀의 차가움 뒤에 숨겨진 참모습을 발견하고 더욱 가까워진다. 어느날 서로의 몸을 석고로 뜨는 과정에서 둘은 진정으로 상대방의 생채기를 어루만진다. 이들의 이야기는 액자 밖의 화자 ''나''에 의해 드러난다. ''나''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장운형과 만나게 됐고 그의 라이프캐스팅 작업에 대해 "왜?"라고 묻는다. 그리고 ''한 조각 불꽃이 튀었다 사라지는 순간,그 무서운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답을 듣지 못한다. 그 후 그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남긴 노트의 내용이 바로 소설의 줄거리다. 에필로그에서 ''나''는 2년 후 그의 유고전에 초대받고 그 자리에서 실종됐다는 장운형과 E일 것으로 보이는 한쌍의 남녀를 보고 쫓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행인들 사이로 또다시 사라져버린다. 화자는 장운형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을까. 그는 유년기에 어머니의 얼굴에서 ''하얀 탈바가지''를 연상하고 손가락 마디가 잘린 삼촌의 이중적인 삶으로부터 겉과 속의 차이에 대해 성찰하게 된 인물.E가 ''껍데기와 껍질이 어떻게 다른지''를 묻는 대목이 그의 캐릭터를 은유적으로 부각시킨다. 섬세한 감수성으로 조각가가 된 그는 멋진 몸매보다 ''평범하고 불균형한,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벗겨놓고 보면 낯설게 보이리라 짐작되는 몸''에 더 끌린다. 손이라는 매개도 그렇다. 결국 그가 보여주려고 한 건 ''누더기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의 컴컴한 공동(空洞)이었는지도'' 모른다. 작중 화자인 ''나'' 역시 끝까지 어떤 해답을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L의 몸을 그대로 뜬 틀집에 애벌레처럼 들어가 누워보는 장운형의 몸짓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왜 내 삶의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가''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