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수녀(93)는 테레사 수녀 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1999년 한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 10명 중 한 명은 그를 20세기 최고의휴머니스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빈민구호단체 '엠마우스'의 창시자 피에르 신부가 '파리의 넝마주이'로 불리는 것처럼 '카이로의 넝마주이'로 불리는 엠마뉘엘 수녀의 첫 저작 「풍요로운 가난」(마음산책)이 우리말로 번역.소개됐다. 1908년 브뤼셀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을, 그리고 구유 속에 누운 아기예수의 모습을 보고서는 예쁜 침대를 가진 동생을 떠올리면서 '불평등'에 대해 눈을 뜬다. 스무 살에 수녀가 된 그는 이집트, 수단, 터키, 튀니지 등 전세계 가난한 나라의 빈민가로 뛰어들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며 가난을 몰아내는 데 평생을 바친다. 그는 희생적 삶과 함께 교회가 재산을 팔고 가난해져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교황에게 직접 전달하는 등 거침없고 솔직한 언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1993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큰 혼란에 직면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빈곤을 퇴치해 선진국처럼 잘 살 수 있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는데, 그가 본 부유한 나라프랑스에는 갖가지 심각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유한 나라의 안락함 속으로 떨어진 나는 뜻밖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불만과 마주치게 됐다. 들려오는 것은 온통 불평밖에 없었다. 세금, 행정관리, 교통요금, 휘발유, 학교, 아이, 배우자, 월급, 일자리. 이 모든 것들이 온통 불만과 파업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물론 끔찍한 빈곤을 눈으로 확인하고 분노로 몸을 떨기도 했다."(18-19쪽) 이 책은 "카이로의 넝마주이가 느끼는 만족감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며, 유럽의 부자가 느끼는 불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하는 자문에 대한 자답인 셈이다. 엠마뉘엘 수녀는 책을 통해 가난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물질적 풍요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처방전 혹은 행복한 삶의 원천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즉 '가난의 정신'을 통한 정신적인 풍요와 행복의 향유를 이야기한다. 그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덜 소유하고 조금만 더 함께 나누면 물질적 가난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다는 소박하지만 큰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백선희 옮김. 240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