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 주점에서 외상술을 마시면서 허세를 부리지만 상관의 헛기침에 가슴이 철렁하는 소심한 인간.철지난 넥타이,꼬깃꼬깃한 바짓단. 직장은 서울이지만,집은 수도권 전철로 드나드는 위성도시.하루빨리 돈을 벌어 서울 시민이 되고자 하는데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어림없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에서 회사의 사보 편집을 담당하는 말단 사원도,박정규의 "니느웨이로 가는 길"에서 상사의 비리를 파헤치려다 위기에 몰린 김계장도 그런 인물이다. 하루 종일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고역스러운 업무에 매달리다 파김치가 되어 터벅터벅 귀가하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들 경제성장기 샐러리맨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샐러리맨 하면 한 때는 모두들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서울로 유학가 학교를 마치고 일단 번듯한 회사에 취직만 하면 그것으로 출세는 시작되는 것이라 믿지 않았던가. 지금은 영화감독이 된 소설가 이창동의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의 주인공도 그렇게 출세를 한 인물이다. 서울에 와서 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은 교사가 됐고 또 악착같이 아껴 상계동에 작은 아파트를 갖게 됐으니 거의 입지전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의 가슴 한편에는 어린 시절 시장에서 김밥을 팔며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의 고달픈 삶이 자리잡고 있다. 샐러리맨을 즐겨 다루는 대표적 작가 이동하의 '돌'에는 규율이 엄격한 회사에 출근 첫날부터 지각하는 도도한 신입사원이 등장한다. 자유분방한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면서 크게 등용될 것으로 알았지만 부장과의 대립 끝에 결국은 다른 부로 좌천당하고 만다.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한 봉급 생활자로서 어느새 먹고 사는 문제 정도는 간단하게 해결한 듯 휴일에는 식구들과 외식하는 여유까지 얻은 이들…. 이 정도면 분명히 신분상승을 한 것이고 먼 미래까지 안정감 있게 살 수 있을 법한데 실제로는 그리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또 샐러리맨들이다. 심지어 회사 중역이 되었다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오히려 부하 직원이 상관인 김 부장을 길들이기 위해 술을 잔뜩 먹인다(이동하의 '상전 길들이기').부장은 술이 취해 한밤 중에 사장 집에 가서 방뇨를 하는 실수를 저질러 위기를 자초한다. 고소해하는 부하 직원 앞에서 부장은 술 주정을 하며 자기 역시도 상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임을 하소연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승진을 위해,출세를 위해 노심초사 애태우며 일하는 우리의 샐러리맨이기에 가족의 내조 또한 눈물겨울 때가 있다. 김향숙의 '바다여 바다여'에는 공무원으로 타지에서 근무하며 오래 집을 비우는 남편의 승진을 위해 상관인 국장부인에게는 비굴하게 아첨하면서 부하 직원의 부인 앞에서는 잘난 척하는 아내의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남편을 대신해 아예 스스로 샐러리맨이 된 여성의 모습도 최근 소설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2001년 작인 이윤식의 '클로버꽃 잡초에 눕다'의 여주인공은 은행원으로서 시어머니에게 매달 40만원의 용돈을 보내는 문제로 남편과 실랑이를 벌인다. 어쨌든 격무와 과로,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힘겨운 일상을 꾸려 가지만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은 성실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루려 한다. 샐러리맨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적 중산층 부류가 아닐까. 좋은 예로 지난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내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이른바 '넥타이 부대'다. 그런 자부심으로 고달픈 시간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샐러리맨의 하루하루야말로 우리 사회와 가정을 풍요의 광장으로 이끌어 가는 가장 값지고 소중한 시간들일 것이다. 문흥술(문학평론가.서울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