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제국주의는 총칼과 선교사를 동반한 채 팽창과 침략을 감행했다. 이와 궤를 같이 한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인류학이 그것이다. 총칼과 함포가 지나간 자리에는 기독교로 무장한 선교사와 보이는 것이 모두 야만(savageness) 투성이인 인류학자들이 들어앉았다. 선교사나 기독교도, 혹은 인류학자의 눈에 비친 식민지와 예비 식민지는 교화돼야 할 야만적 존재(savageness to be civilized)일 뿐이었다. 기독교는 특히 배타적이었다. 그들에게 기독교는 문명(civilization)의 화신이었고,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교화를 기다리는 야만이었다. 기독교 전파 과정에서 '순교자'가 양산됐으며, 제국주의는 그것을 빌미삼아 침략과 식민통치를 정당화했다. 인류학 또한 기독교와 다를 바 없는 서구제국주의의 주구 노릇을 했다. 민속지수집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연구 결과는 그들이 의도했건 그러지 않았건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 크게 이바지했다. 인류학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프랑스 출신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1991)를 만나 치명타를 맞는다. 1955년 출간된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를 통해 그는 인류학이 제국주의 산물이라는 준엄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를 깨뜨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레비-스트로스가 이런 폭탄선언을 들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브라질 열대 및 오지에 사는 이른바 원시 야만 부족에 대한 그의 연구성과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규명한 아마존 원시림 야만부족의 '친족 구조'가 현대 서구의 그것에 비해 더 야만적이라거나 원시적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야만'과 '문명'의 대립구도를 깨부수자는 레비-스트로스의 논리 그 자체가 이미 서구 기독교주의와 제국주의의 포로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레스-스트로스의 선언은 '야만'과의 대립 구조를 통해 '문명'의 우월성을 강요하고 그것을 강요한 제국주의 전통이 없고는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고 기독교에 반대되는 전통과 이를 고수하는 사람과 사회를 파괴하며, 또 그것이 제국주의와 얼마나 쉽게 결합하는 속성을 지녔는지를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라는 문학작품에서도 발견한다. 1719년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우가 발표한 이 소설은 바다를 동경하던 모험심 강한 영국인 로빈슨이 항해 도중 배를 조난당한 다음 홀로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28년 동안이나 무인도 생활을 슬기롭게 헤쳐간다는 내용이다. 원 제목이 '요크호(號)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생애와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The Life and Strange Surprising Adventures of Robinson Crusoe of York)인 데서 엿볼 수 있듯 이 작품은 '해가 지지 않는다'는 당시 영국의 팽창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주인공 크루소가 동료 식인종에게 잡혀 먹히기 일보직전인 소년을 구출한 뒤 그에게 프라이데이(Friday)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는 대목이다. 여기서 작가 디포우는 식인종을 '야만'의 대표주자로 상징화하는 한편 그것을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교화 수단이 기독교임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식인종 소년에게 기독교적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을 붙여준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무렵 한동안 국내외에서 들끓던 개고기 논쟁이 월드컵축구대회를 앞둔 요즘 다시 들끓고 있다. 88년과 요즘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깥에서 이 문제를 먼저 제기했고, 개고기를 먹는 것은 '야만적'이며, 그것을 제기한 측이 변함없이 서구 기독교 사회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논쟁을 바깥에서 국제여론화하는 측이 노리는 결과는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개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논쟁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배후를 들춰보면 거기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서구 기독교만이 '문명'이며, 개고기를 먹는 민족 혹은 사회는 그 '문명'에 맞춰 교화되어야 할 '야만'일 뿐이라는 뿌리깊은 배타성이 존재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개고기를 먹는 한민족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며 이런 우리는 그들에게 구출되어 '프라이데이'로 창씨개명을 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