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명의 역사는 에게해→지중해→대서양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서구인들이 벌인 주도권 쟁탈의 역사이다. 특히 현대 세계체제의 틀인 '세계화'에까지 맥락이 닿아 있는 대서양 시대는 국제관계사 해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김명섭 교수의 「대서양 문명사」(한길사)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도시간 교류가 대서양으로 확대되면서 하나의 보편적 '표준'(standard)을 창출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대서양 문명을 넘어서기 위한 한국인의 자세를 모색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의 역사는 대서양으로 대표되는 서유럽의 역사이고, 나아가 대서양의 우안에서 좌안으로 진행되는 세계화의 역사이다. 대서양은 세계적 표준의 상징이며, 대서양의 역사는 보편성의 신화를 창조하고 그것에 기초해 발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또한 유럽이라는 특수를 보편으로 승화시켜보편과 동일시하게 함으로써 대서양을 중심으로, 비서구 세계를 주변으로 만든 역사이다. 저자가 이처럼 대서양의 역사를 보편적 표준에 주목해서 보는 이유는 세계화처럼 한 국가를 전제로 한 일국사에서는 가려져 있는 측면을 드러내주는 장점이 있기때문이다. 대서양에 대한 주도권 쟁탈전은 오스만투르크에서 비롯되는데 저자는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1453년)에 이은 지브롤터 해협 진출 시도(레판토 해전.1571년)를 이슬람적 '표준'의 확장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처럼 이슬람적 표준의 확장과 좌절에서 출발, 레판토 해전 이후 대서양의 주세력국이 된 포르투갈→에스파냐(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표준'의 부침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의 표준이 쇠퇴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등장하는 표준에 의해 흡수ㆍ계승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포르투갈의 표준은 에스파냐의 표준에 의해 흡수ㆍ통합됐고, 다시 네덜란드적 표준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의 표준은 이전의 표준들을 흡수해 더욱 강력하고 광대한 영향력을 가진 표준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또한 대서양적 표준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맷돌의 중심인 대서양 세계에서 공급되는 지식과 정보, 기술 등을 소화해내기 위해 맷돌의 주변에 위치한 비대서양 국가들은 더욱 빨리 돌지 않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커다란 배제의 공간을 남겨놓는 세계화의 반민주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저자는 "자기 표준에 입각한 동심원적 구조의 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다. '반세계화'와는 달리 대서양적 흐름의 방향과 힘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대서양적 표준의 주변부를 이탈하여 더욱 적극적인 의미의 세계화를 이룩해내자는 의미로, "거인의 어깨를 빌리되 거인보다 더 멀리 볼 줄 아는, 문명의 흐름을 정확히 포착하되 결코 그 흐름에 함몰되지 않는 '강소국'(작지만 강한 국가)의 생존전략"이라는분석이다. 페르시아라는 대국의 도전에 직면했던 아테네, 대서양 세계를 표류했던 유대인, 이슬람 문명권의 도전에 맞섰던 베네치아 등에서 저자는 자기 표준에 입각한 동심원적 구조의 세계화 방편을 찾아내고 있다. 760쪽. 3만5천원.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k02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