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00년 무렵 신라 사람 김대문(金大問)이지었다는 「화랑세기」(花郞世記)를 그대로 베낀 진본인가, 아니면 20세기 들어와 누군가가 만들어낸 위작인가 논란이 분분한 「화랑세기」 필사본이 신라시대 작품이라는 주장이 경제학계에서 제기됐다. 이로써 역사학계와 「화랑세기」 필사본에 등장하는 향가에 주목한 일부 국어국문학자를 중심으로 전개돼 온 필사본 진위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한국경제사 전공인 성균관대 경제학부 이영훈(李榮薰) 교수는 지난 11일 한국고문서학회에서 발표한 '「화랑세기」에서의 노(奴)와 비(婢)'라는 논문에서 필사본에 나타나는 이 두 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개념이 아니며, 따라서 이런「화랑세기」를 20세기 누군가가 가짜로 창작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지난 99년 이종욱 교수가 출간한 「화랑세기」 역주본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奴와 婢라는 글자는 각각 10회 가량 출현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우리가 알고있는 최하층 천민인 '사내종'과 '계집종'이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신속(臣屬), 즉주종(主從) 관계를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낭주(金珍娘主)라는 여인은 정식 남편인 구리지 말고 설성(薛成)을 비롯한 다른 남자 5명을 거느렸는데 복잡한 남자관계를 추궁하는법흥왕의 힐문에 금진은 "첩이 불행하게도 타락하여... 사노(私奴)인 설성 한 사람만 있을 뿐이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목을 그런 보기로 제시하고 있다. 즉 여기서 '사노'란 금진낭주에게 얽매인 최하층 사내 종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금진이라는 한 '개인에게 복종하는 아랫사람'이라는 것. 필사본에는 우두머리 화랑인 풍월주 계보를 잇는 인물중 12세 풍월주로 보리공이 있다. 그에게는 정실 부인인 만룡낭주(萬龍娘主) 말고 후단(厚丹)이라는 여인이더 있었다. 한데 필사본은 후단을 만룡낭주의 침비(枕婢)라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으로는 '잠잘 때 시중 드는 계집종'이라는 정도로 해석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런 '침비'가 단순한 천민층이 아니라 지배층 여자들 사이에서 높은 신분의 여인에게 복종하는 아래 여인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奴)처럼 「화랑세기」 필사본에 사용된 '비'(婢)라는 개념도 우리가 알고있는 개념과는 그 성격을 완전히 달리한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따라서 이 교수는 필사본에 사용된 이런 개념들을 경제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면"필사본 「화랑세기」가 7세기 (신라시대) 사정을 원형 그대로 생생히 전달"하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화랑세기」는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신라 성덕왕 3년(704) 한산주 도독을 지낸 김대문이 쓴 책으로 그의 다른 작품 「고승전」(高僧傳),「악본」(樂本), 「한산기」와 함께 "(김부식 생존 당시인) 지금도 남아 있다"고 기록돼 있으나 이후 언제인가 멸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1989년과 1995년 「화랑세기」를 붓으로 베껴 종이에 옮겨적었다고 생각되는 필사본 두 종류가 잇따라 출현함에 따라 이것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베낀 것인가, 아니면 순전한 창작품인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일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