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국 일본에서 활동중인 재불작가 곽수영씨가 31일부터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국내에서 5년만에 여는 전시회다. 익명의 인물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여정(Voyage)"시리즈를 선보인다. 거칠면서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가 돋보이는 화면을 보여줬던 그의 작품은 지난97년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크게 바뀌었다. 판화와 드로잉의 장점을 결합해 자유로운 "선(線)의 유희"를 시도하는 작업이 최근의 작품 경향이다. "우연한 기회에 뉴욕의 스페이스 언타이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게 됐는데 종이 위에 드로잉만으로 그렸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바로 이거구나 싶어 긁어내는 작업으로 변화했죠" 그의 제작기법은 우선 캔버스에 두텁게 유화로 색칠을 한 후 포크 못 등의 연장으로 긁어내 화면을 흠집내고 부수는 행위다. 화면은 긁어내는 행위로 인해 파괴돼 '무(無)'를 향해 달려가지만 종국에는 선들이 모여 덩어리가 되고 무정형의 형상으로 가득차게 된다. 작가는 판화기법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여년간 파리에 머물고 있는 곽씨는 유화가 잘 마르지 않는 기후로 인해 판화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판화의 기계적인 느낌을 선의 유희로 부드러움을 주고,판화의 절제된 요소를 도입해 지나치게 감성적인 유화의 단점을 보완한 것. 그래서 "회화는 판화처럼,판화는 회화처럼"이라는 작가의 주장처럼 그의 화면을 지배하는 날카로운 선들은 동판의 느낌을 주면서도 깊이와 색감을 달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형태다. 인물을 그리되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모호한 형태로 드러낸다. 미술평론가 유재길씨(홍익대 교수)는 "인물 형태가 초기에는 그려진 형상이었으나 점차 새겨진 형상으로 바뀌면서 형태의 무게가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한 물질의 표현을 뛰어 넘어 상상력과 기억의 공간을 넘나드는 형태라는 의미다. 곽씨는 요즘 "언제 그리기를 그만 두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고 한다. 형상을 향해 나아가지만 작가 앞에 형상이 생겨나는 게 싫어진다는 뜻이다. 작가가 자유로운 선의 유희를 추구하는 것도 다름 아닌 '의도되지 않은 형상'을 만나기 위한 작업인 셈이다. 홍익대 서양화과와 파리 소르본느 조형미술 대학원을 졸업한 곽씨는 프랑스 미국 일본 한국 등에서 30여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11월6일까지. (02)725-1020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