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찍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작가들이 즐겨 다룬 작업이다. 멀리 북송대 수묵화에서부터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작품에 이르기까지 점찍기 작업이 다양하게 시도돼 왔다. 서울 팔판동 갤러리인에서 9번째 개인전을 갖고 있는 최선호(44.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씨의 작업도 "점찍기"가 키포인트다. 색다른 것은 선인들의 필사본이나 고서(古書)위에 점을 찍는다는 점이다. '제목이 반이다'는 작가의 지론처럼 이번 전시 제목도 '마음의 점찍기(點心)'란 어려운 용어가 붙어 있다. 그는 밑칠한 캔버스 위에 선인들의 필사본이나 고서를 붙인 뒤 그 위에 점들을 반복적으로 찍는다. 고서를 한 장 붙이는 경우도 있고 서너장 붙이기도 한다. 아크릴로 점을 찍은 화면이 모던하면서 강한 이미지를 주는 반면 천연 물감을 사용한 화면은 질감의 깊이가 느껴진다. 낱장의 고서들은 옛 선인들의 손때가 묻은 기나긴 역사를 상징한다. 그 위에 작가는 참선을 하는 마음으로 점을 찍어나간다. 수도승이 목탁을 두드리듯 작가는 자신의 점찍기를 통해 무상무념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형식은 미니멀 아트같지만 내용은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다. "옛 서예가들이 온 힘을 기울여 한자 하나 하나를 써내려간 노고를 생각하면 저의 점찍기 행위는 아무것도 아니죠.저에게 점찍기 작업은 선에 도달하려는 희망이고 그 부산물이 예술일 뿐입니다" 전시회 때마다 새로운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4년 뒤 한국화로 전공을 바꿨다. 한의사였던 외조부의 영향과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던 1980년부터 8년간 간송미술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90년대에 뉴욕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후 그는 지난해부터 성균관대대학원에서 동양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준비중인 박사학위 논문은 추사 김정희의 서체미학. "간송미술관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사상가로서의 추사학을 연구하고 있다면 저는 추사체의 미학을 분석했습니다" 지난해 7월 송광사에서 참선 수련회에 참가한 이후 작가는 요즘 참선에 깊은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신작 30여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회는 99년 갤러리현대에서 보자기상의 이미지를 보여준 개인전이나 98년 카이스갤러리에서의 전시회 작품과 연장선상에 있지 않은,전혀 새로운 시도이다. 그래서 최씨는 "이번 작업을 완성품이라기보다 참선 수행과정의 산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시공을 초월하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품이 완성될 때까지 그의 '점찍기 행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1월2일까지. (02)732-4677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