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 새 짐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즐겨 그려왔던 그림의 소재다. 화(花)는 꽃이고,훼(卉)는 풀이며,영(翎)은 새의 깃털이고 모(毛)는 짐승의 터럭이다. 우리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웠던 조선후기 진경(眞景)시대의 "화훼영모"는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났을뿐 아니라 당시 인간들의 풍부한 정서를 반영하고 그림의 다양한 형상을 보여줬던 소재였다. 조선시대 5백년 동안 그려진 화훼영모 대표작을 한 자리에 모은 '화훼영모'전이 오는 14일부터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61번째 정기전을 맞은 간송미술관이 환갑을 자축하기 위해 마련한 특별전으로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작 1백20여점이 출품된다. 단원(檀園)김홍도의 '화조팔폭병' '고목비금'을 비롯해 공재(恭齋)윤두서의 '군마',겸재(謙齋)정선의 '서과투서',북산(北山)김수철의 '자황양국',오원(吾園)장승업의 '초원지록'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화훼영모의 사생(寫生)화풍은 공재와 겸재에서 시작돼 화재(和齋)변상벽과 현재(玄齋)심사정을 거쳐 단원에 이르러서야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난다. 단원은 대상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묘사를 피하고 화훼영모 자체보다는 그것이 놓인 정경의 분위기와 느낌이 주는 정취를 포착해 냈다. 화훼영모와 필묵이라는 매개를 통해 정(情)과 경(景)이 친화적이고 조화롭게 만나 혼연일체를 이뤄냈다. 그래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는 시중유화(詩中有畵)와 화중유시(畵中有詩)의 경계에 도달했다는 평을 얻었다. 조선전기 그림들은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주자성리학을 이념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중국화풍을 그대로 모방하는 단계였다. 조선성리학을 이념 기반으로 하던 조선후기 진경시대에 이르러서야 우리 주변의 꽃과 풀 새 짐승을 철저하게 사생해 고유색을 드러내게 된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인조반정 이전의 조선전기에는 소를 그릴 때 우리나라에 없는 물소가 등장하다가 진경시대에 이르러 우리 소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28일까지. (02)762-0442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