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의 대표작이자 20세기 일본 문학의 고전인 「행인(行人)」(문학과지성사. 유숙자 옮김)이 국내에서 최초로 번역, 출간됐다. 1912-13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됐던 이 소설은 화자인 나가노 지로와 그의 형 이치로, 형수 오나오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인간심리와 감정의 추이가 예리하고 심도있는 묘사로 전개된다. 대학교수인 이치로는 훌륭한 학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만 몰두, 타인과 단절돼 있는 인물. 그는 아내 오나오와 동생 지로의 관계를 의심한 나머지 아내의 정조를 시험해 보기 위해 지로에게 오나오와 함께 여행하도록 권유하면서 여행중 오나오가 보이는 태도를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형수와 시동생은 여행을 떠나고 동생은 형에게 "형수님의 인격에는 의심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고 전하지만 형은 이를 믿지 않고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인다. 그리고 "죽느냐, 미치광이가 되느냐, 아니면 종교를 믿느냐, 내 앞엔이 세 가지밖에 없네"라며 고독과 절망에 더 깊숙이 빠져든다. 나쓰메의 후기 작품에 속하는 이 소설은 인간에 내재된 에고이즘과 타인 불신으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인간 실존을 철저하게 파헤진 수작으로 꼽힌다. 이런 요소는시대를 뛰어넘어 인류가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의 지원으로 문학과지성사가 의욕적으로 펴내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제8권으로 나왔다. 390쪽. 1만3천원. (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le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