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높은 고승(高僧)은 왜 남자 스님(비구) 뿐일까. 한국불교사에는 비구만 있고 비구니는 없다고 할 정도로 비구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근.현대 비구니 30여명의 삶과 구도여정을 담은 "깨달음의 꽃"(전2권,하춘생 지음,여래)이 나왔다. 지난 98년 나온 1권에서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긴 비구니 17명의 행장을 정리한 데 이어 최근 15명의 행장을 새로 정리한 2권이 선보인 것. 국내 최초의 비구니 열전인 셈이다.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남녀차별이 적잖은 게 불교계의 현실. 비구니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젊은 비구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춰야 하는 등 비구니 팔경계(八警戒)를 내세운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정진,또 정진해 "깨달음의 꽃"을 피운 비구니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경남 울주 석남사를 중창한 인홍(1908~1997)스님과 성철 스님의 일화 하나. 성철 스님이 어느 추운 겨울날 인홍 스님을 절 앞 연못으로 불러내 갑자기 밀어 빠뜨렸다. 물에서 나온 인홍 스님은 젖은 옷 그대로 잠도 자지 않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에 들어가 옷이 말라버렸다. 다 허물어져가던 운문사를 지금의 비구니 제일총림으로 일으켜 세워 "운문사 당간지주"로 불리는 유수인(1899~1997)스님,손에 염주를 든 채 앉아서 열반에 든 진오(1904~1994) 스님,"수행하기 싫으면 환속하라"고 다그쳤던 강장일(1916~1997) 스님 등의 행적도 감동적이다. 저자는 "덕높은 비구니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단지 비구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세세한 수행모습이나 깨달음의 경지를 우리는 애써 외면해왔다"고 지적하고 "이런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