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4일부터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 정현(45)씨는 20여년 가까이 '인체'만을 다룬 조각가다. 그는 이번 다섯번째 개인전에서 '침목(枕木)'을 재료로 사람의 형상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조각 16점과 드로잉 등 3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6년간 조각수업을 쌓았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20여차례에 걸쳐 전시회를 가졌고 지난 99년에는 뉴욕 힐우드미술관에서 황창배 홍재연 김호연 김대수씨와 함께 그룹전에 참여했다. 침목은 작가가 98년 개인전에서 첫 선을 보인 후 3년째 매달리고 있는 소재다. 박석원씨 등 일부 원로조각가들이 침목을 이용한 설치작품을 제시한 적은 있지만 정씨처럼 침목을 완전 분해하고 깎아 새로운 형태로 제작한 작가는 극히 드물다. 침목은 다루기도 성형(成形)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기차의 엄청난 하중과 자갈 사이에서 모진 비 바람을 견뎌내는 침목을 보고 있으면 '세월의 무게'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작가는 침목을 재료로 쓰다보니 "침목 자체가 갖는 힘 에너지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방배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도끼 원형톱 체인톱 등 무시무시한 도구들이 즐비하다. 크고 단단한 침목을 다루기 위한 불가피한 도구들이다. 침목을 다루는 방식은 이번 개인전에서 크게 달라졌다. 지난 98년 개인전에서 작가는 침목의 원형은 그대로 둔 채 도끼를 이용해 표면을 음각으로 파고 들어갔지만 이번 개인전에 출품한 '얼굴'시리즈는 침목을 완전히 분해,토막들을 볼트로 연결한 후 깎는 작업이다. 전에 비해 이미지가 훨씬 강하고 긴장감을 더해준다. 미술평론가 이태호(조각가)씨는 "얼굴 시리즈는 오랜 세월의 침묵을 이겨내고 새로운 형태로 태어난 생명체로 바로 우리 인간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작품인 '거꾸로 서있는 사람' 시리즈는 군무(群舞)를 연상시키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침목을 작은 토막으로 잘라내고 일반 나무와 함께 연결한 후 겉을 석고로 발랐다. 침목의 갈색톤과 석고의 흰색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인체의 형상은 팔 다리도 없어 거의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체돼 있다. 하지만 작가는 추상으로 넘어간 적이 없다. 그는 "인체는 대상일 뿐"이라며 "인체를 통해 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침목 작품은 사실 상업성과 거리가 멀다. 영구보존이 어렵다는 요인도 작용하지만 기본적으로 팔리지 않는 작품이다. 게다가 그는 수입이 보장되는 조형물에도 별반 관심이 없다. 오직 침목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을 보면 그는 '작가정신'이 투철한 조각가임에 틀림없다. 글=이성구 sklee@hankyung.com